'1cm 세상' 시각장애 박차고 42.195km 세계로 달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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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차승우씨(左)가 19일 서울 월드컵 공원에서 도우미 신태용(SC제일은행 부장)씨와 훈련을 하고 있다.

하느님은 그에게 1㎝ 거리에서 세상을 보도록 허락했다.

장애인의 날(20일)을 앞두고 시각장애인 차승우(43.장애1급)씨를 찾았다. 황소처럼 크고 맑은 눈이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는다.

"차승우씨 맞으세요"라고 묻자 "누구세요"라며 얼굴을 맞댈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살핀다. 그가 사물을 정확히 식별할 수 있는 거리는 딱 1㎝다.

그는 마라토너다. 106차례 마라톤 경기에 참가했고 풀코스만 26번을 완주했다. 시각장애인 마라톤 세계에서는 유명 인사다. 매주 두세 차례 서울 남산 산책로에서 훈련을 한다. 그는 1964년 서울 사당동에서 태어났다. 어머니는 시각장애인이었고, 아버지는 큰 수술을 받아 몸이 약했다. 선천적으로 눈이 나빴지만 영양실조인 줄 알고 방치했다. 열여섯 살 때 국립의료원을 찾았고 '시신경 위축' 진단을 받았다.

진학을 포기하고 섬유공장에 취직했다. 그러나 바늘에 실을 꿸 수가 없었다. 기술 배우기도 쉽지 않았다. 88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서초동 비닐하우스에서 단둘이 살던 어머니도 2001년 9.11 테러가 나던 날 돌아가셨다. 외로웠다. 그해 안마 자격증을 땄지만 겉보기에 시각장애인처럼 보이지 않아 손님들이 오히려 싫어했다. 일거리도 떨어져 30여 만원의 생활 보조금과 장애인 수당으로 근근이 생활한다.

2001년 한강 여의도 둔치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에 시각장애인 친구를 따라나섰다가 얼떨결에 10㎞를 함께 달렸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뭐 그런 거였죠. 그런데 달리다 보니까 잡념도 없어지고 기분이 좋더라고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도우미를 연결하는 50cm의 끈(작은 사진(右)). 차씨가 컴퓨터 자판을 들여다보고 있다. 관련화보 ▶photostory.joins.com


당장 서울 시각장애인 마라톤 클럽에 가입하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달렸다. 이제 그는 다른 꿈을 꾸고 있다. 5월 6일 '하이 서울 페스티벌 한강 수영대회'에 참가한다. 시각장애인 최초의 도전이란다. 더 큰 꿈도 있다. 수영 3㎞, 사이클 100㎞, 마라톤 하프코스를 달리는 철인 3종 경기에 도전하는 것이다. 정상인들도 힘들어 하는 일이기에 더욱 욕심이 난다. 그는 내일도 어김없이 운동화 끈을 질끈 매고 세상을 만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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