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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국 연방공군 후방 부사령관 김파벨씨 첫 한인장군 탄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5면

지난 37년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에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당했던 한인후예 김파벨씨 (50·타슈켄트거주)가 장군으로 진급, 독립국가연합(CIS)방공 군의 후방부사령관 직책을 맡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김 장군은 최근 교포신문 고려일보와의 회견에서 부모가 강제이주 직후부터 겪어야했던 온갖 시련과 군문에 뛰어들어 인정을 받게되기까지의 과정을 상세히 밝혔다.
그의 부친 김흔석씨는 부인 문신군씨 및 세 아이와 함께 우즈베크로 강제 이주 당해 초원과 삼림뿐인 스텝지역 시르다리야 구역에 정착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해양학교를 졸업한 김씨는 대형여객선 선장이 되어 대양을 누벼보겠다는 야망이 일거에 무산된 채 이주 첫해에 두 아이를 질병으로 잃고 그 다음해 또 큰아들이 죽는 등 뼈아픈 시련을 겪어야만 했다.
연해주에서 데려온 세 아이를 모두 불의에 잃은 김씨 부부는 직업은 물론 살림집도 마땅치 않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좌절하지 않고 생활을 영위해오다 5년 후인 42년 치나스 강가의 생활터전인 전마선에서 파벨을 비롯해, 빅토르·알렉산드르 등 세 아들을 차례로 낳았다.
파벨은 어려서부터 아버지의 꿈을 대신 이룩하겠다는 일념으로 해양학교 입학을 고대했으나 막상 나이가 찼을 때 지역군사위원회에서 군사비행학교로 갈 것을 권유, 결국 이에 응하게된다.
졸업 후 소위 계급장을 달고 아슈하바드로 배치됐으나 소수 민족이란 이유로 상관들과의 관계가 처음부터 원만치 않았다.
그러나 사격·수영 등 스포츠에 탁월했던 파벨은 곧 투르키스탄 군관구 선수단에 선발된 후 발군의 솜씨를 발휘, 고자세로 일관하던 상관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총 참모부 직속 군수참모대학에 입학, 우등으로 졸업함으로써 한인의 우수성을 널리 떨치기도 했다.
파벨은 진급을 거듭하면서 연대장·사단장을 거쳐 마침내 현재의 직책인 방공군 후방 부사령관에 올랐으며 지난해 10월 고르바초프 당시대통령에 의해 소장으로 진급했다(소련에서는 대령에서 바로 소장으로 진급).
그의 친동생 알렉산드르 역시 타슈켄트 군사종합학교를 졸업했으며 아들 시그리도 유명한 수보로프 사관학교와 울리야 노프스크 고급전차학교를 마친 후 아프가니스탄에서 전차중대장으로 용맹을 떨쳐 많은 훈장을 받았다.【모스크바=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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