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로 가는 경제정책(기로에 선 대처리즘: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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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복지예산 확대로 경기 활성화 보수당/국유화 포기… 「사회적 시장경제」 노동당
9일 실시된 총선을 앞두고 영국의 집권 보수당과 노동당이 지난달 10일과 17일 각각 발표한 92∼93년도 예산안은 두 정당이 각각 과거와는 달리 대처리즘으로 불리는 신보수주의 이데올로기 내지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을 크게 완화,경제정책에서 중도노선으로 궤도수정을 시도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쟁점은 2년전부터 계속되고 있는 지난 30년대 세계 대공황 이후 가장 심각하다는 경기침체 및 10%를 넘고 있는 실업률등 경제문제다.
집권 보수당의 예산안은 최저소득세율 5% 인하,국영철도회사 등의 민영화,사회복지예산 대폭 확대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중 복지예산의 대폭 확대방침은 과거 보수당이 일관되게 취해온 복지지출 억제방침에서 궤도를 이탈한 것으로 지적된다.
보수당 예산안의 이같은 변화는 침체된 경기 진작을 위한 수요창출을 위해 취해진 것이다. 그 결과 새 예산안은 지난 79년 집권이후 보수당이 편성한 어느 예산안보다 재정적자 규모가 가장 큰 2백80억파운드(38조원)의 재정적자가 계상되어 있다.
보수당은 과거 『작지만 강력한 정부』라는 슬로건 아래 건전재정 편성을 경제정책의 제1목표로 삼아 왔었다. 그러나 새 예산안은 적자폭이 국내총생산(GDP)의 4.5%에 달하는 팽창예산이라는 점에서 과거와는 궤를 달리한다.
한편 노동당의 「그림자 예산안」은 최고소득세율 50% 신설,9%의 사회보험분담금 납세소득상한 철폐,사회복지예산 대폭 확충,경기진작을 위한 11억파운드(1조5천억원) 규모의 기업투자 지원자금 마련등 내용을 담고 있으며 보수당 예산안에 비해 재정지출규모가 더욱 크게 잡혀있다.
그러나 노동당 예산안은 고소득층에 대한 세금을 크게 늘려 세입도 늘어남에 따라 재정적자 규모는 보수당 예산안과 비슷하거나 적은 수준으로 되어 있다.
노동당은 또 예산안 발표와 함께 닐 키노크 당수가 『정부의 역할은 시장을 대신하는 것이 아니라 시장이 적절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함으로써 과거의 주요산업 국유화정책을 포기하고 구서독식의 「사회적 시장경제노선」을 채택할 것임을 분명히 했다.
두 정당의 예산안이 기본적으로 각각 보수주의 노선과 사회주의 노선을 반영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와는 달리 서로 상대방의 특징적 정책노선을 과감히 수용,경제정책상 좌와 우의 간격을 좁히고 있는 것이 두드러진다.
두 정당 경제정책의 이같은 변화는 지난 10여년간 이들 두정당이 겪어온 당내 노선투쟁의 산물이다.
노동당은 지난 79년 정권을 내놓은 이후 83,87년 총선에서 참패를 거듭했다. 당시 총선패배의 원인이 노동당의 이데올로기에 치우친 과도한 사회주의적 노선에 있다고 판단한 키노크 당수는 당내 급진좌파세력을 제거하는 노선투쟁을 마무리하고 이번 총선에 임하고 있다.
보수당도 지난 87년 총선에서 승리,세번째 연속 집권한 이후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강력한 보수주의 노선이 지나쳐 유럽공동체(EC) 통합움직임과 80년대 후반기에 닥친 세계경제의 침체에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당내 비판에 부닥쳤다.
이에 따라 대처 전 총리가 지난 90년 11월 사임함으로써 보수당 내분은 「유연한」보수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영국의 정치세력을 양분하고 있는 두 정당의 이같은 변신은 새롭게 발생하는 정치·경제·사회적 문제들에 적응하려는 노력을 반영하고 있다.<강영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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