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이 은혜로 얽힘 알 때 참된 나눔 꽃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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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원불교 경산 장응철 종법사가 직접 그린 ‘달마도’를 들고 있다. 그림 왼편에 ‘정신개벽(精神開闢) 물질선용(物質善用)’이란 글씨가 선명하다. 장 종법사는 “공부하던 시절부터 잡념이 생기면 그림을 그렸다. 그리다 보면 잡념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28일은 원불교 최대 경절인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이다. 대각개교절은 원불교 창시자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날이자,

원불교를 연 날이기도 하다. 올해 92주년 대각개교절을 앞두고 17일 전북 익산의 원불교 중앙총부를 찾았다.

"마음을 발견해서 법등을 밝혀야 합니다."

교단의 최고지도자인 경산(耕山) 장응철(張應哲.67) 종법사는 '마음공부'의 중요성부터 짚었다. 그는 마음자리가 나눔의 은혜로 가득 차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나눔이야말로 인류의 불평등을 푸는 방법이며 그것이 곧 인류를 구원하는 길이라는 설명이다.

그럼 '나눔'의 참뜻은 뭘까. 단순한 이웃돕기나 봉사의 의미일까. 장 종법사는 "인류 구원을 위해선 '마음의 개벽'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물질 세계는 갈수록 발달하지만, 마음은 갈수록 황폐해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마음을 찾아야 합니다. 순연한 근본정신을 찾으면 알게 되죠. 만유가 서로 얽혀있는데, 은혜로 얽혀있음을 말이죠." 거기서 진정한 나눔이 나온다는 지적이다. 대각개교절은 이같은 '마음의 발견'을 이룬 날이라고 장 종법사는 말했다.

"원불교는 생일이 아닌 깨달은 날을 중시합니다. 거기에 인간의 존재 이유와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겁니다. 그래서 부처, 공자, 예수처럼 인류를 구원할 성자가 태어나는 것이 인간 세상의 가장 큰 경사죠."

깨달음은 멀고, 또 어려운 길이 아닌가. 이에 대해 장 종법사는 "이렇게 생각하면 쉽다"고 말을 이었다.

"연애하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럼 직장일을 할 때도 생각이 나겠죠. 그립고, 보고 싶겠죠. 그래도 그 생각을 안 하는 겁니다. 오로지 하고 있는 일에만 전심전력하는 거죠. 그러면 일체의 잡념이 끊깁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을 끊어 나가다 보면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의 생각에는 '뿌리'가 있게 마련이다. 뿌리를 통째로 뽑지 않으면 생각은 또 일어난다.

"수행이나 좌선을 하다 보면 생각의 뿌리가 보이죠. 감자 넝쿨처럼 주렁주렁 이어져 있습니다. 그걸 찾아서 녹여야 합니다. 마음에서 우러나는 참회를 하면 그 뿌리가 녹게 되죠. 그래야 좌선의 깊은 경지에 들게 됩니다." 그러고 보니 건물 여기저기 눈에 띄는 네 글자가 있다. 바로 '네 덕, 내 탓'이다.

장 종법사는 "그렇게 온전한 정신을 차리고, 그 자리에서 취사 선택하면 된다"고 했다. 온전한 정신으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실천하라는 얘기다. 사회적인 현안도 이 자리에서 보면 해법이 나온다고 그는 말한다. 대통령 선거, 남북 통일, 배아세포, FTA(한미자유무역협정), 사학법 개정 등 민감한 현안에 관한 의견도 피력했다.

"우리나라처럼 보수와 진보, 빈부 격차가 심한 곳도 드물죠. 대선 후보는 융합동진할 수 있는 자질과 역량을 갖춘 사람이어야 합니다. 또 동아시아 시대로 옮겨오는 세계 중심 무대를 읽을 수 있는 국제적 안목도 있어야죠." 또 FTA에 관해선 "저도 오랫동안 직접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세계화의 흐름을 역류할 순 없죠. FTA는 '한국인의 세계시민화' 계기가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대신 그늘진 곳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남북통일은 밀물과 썰물이 있지만 대세는 '평화공존'으로 가야 한다는 얘기다.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배아줄기세포 복제는 소름끼치는 일이죠.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는 건 위험스런 일입니다."

사립학교법 재개정 문제에 대해선 "적절히 수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원불교가 운영하는 학교들은 이미 개방형 이사제도를 수용했습니다. 사립학교가 어느 개인의 것이 아니라 공교육 기관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원불교 경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봄바람은 사(私)가 없이 평등하게 불어주지마는 산 나무라야 그 기운을 받아 자라고, 성현들은 사가 없이 평등하게 법을 설하여 주지마는 신 있는 사람이라야 그 법을 오롯이 받아갈 수 있나니라(대종경 신성품 1장)'

자리를 일어설 때 장 종법사가 말했다. "성인들의 마음은 항상 텅 비어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도 그렇게 비워야죠. 그게 바로 마음의 비움이자 발견입니다."

익산 글.사진=백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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