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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 던지고 발길질 시늉 … 교민에 화풀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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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한국계로 밝혀져 재미 한인사회가 충격에 빠졌다. 17일(현지시간) LA 한인회관에서 열린 희생자 추모예배에 참석한 한인들이 희생자를 애도하고 있다. LA지사=김상진 기자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이 한국계 조승희씨로 밝혀지면서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증오 범죄'가 일어나고 있다. 욕설과 폭언을 하고 돌을 던지거나 침을 뱉는 경우도 있다.

버지니아주에 사는 브라이언 김씨는 "맥도널드 앞을 지나가는데 한 백인으로부터 '총만 있으면 너를 쏴죽이겠다'는 폭언을 들었다"며 "당분간 외출하기도 겁난다"고 말했다. LA에서 중국 식당을 운영하는 한 업주도 "다른 인종들이 거리의 한인들을 향해 발로 차는 시늉을 하는 등 분위기가 냉랭하다"고 전했다.

뉴저지주의 일부 학교에선 타인종 학생들이 한인 학생들에게 침을 뱉고 학용품을 던지는 일이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LA 한인타운의 한 식당 주인은 "상호가 '코리안 바비큐'인데 해코지라도 할까봐 무섭다"며 "상황이 험악해지면 간판을 내려야 하나 고민 중"이라며 침통해했다.

이번 주말까지 휴교령이 내려진 버지니아공대에 재학 중인 한인 학생들은 증오 범죄를 우려해 서둘러 학교를 떠나고 있다.

재학생 하지환씨는 "준비되는 대로 친구가 있는 워싱턴 DC 인근으로 올라가 토요일까지 머물 예정"이라며 "한인 학생들은 대부분 집으로 가거나 친척.친구 집을 향해 떠나고 있다"고 전했다. 동포 김호정씨는 "이번 사건으로 미국 내 한인 사회에 불똥이 튈까 걱정된다"며 "당분간 출퇴근 외엔 외출을 자제하겠다"고 말했다.

주류 가게, 청과물상, 세탁소 등 다른 인종과의 접촉이 많은 한인 가게 업주들도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된 상태다.

특히 흑인이 많은 LA 남쪽 지역 등에서 주류 소매점이나 가게를 운영하는 한인들은 더욱 걱정이 크다. NBC.CNN 등 미 주요 언론들이 사건으로 사망한 32명 가운데 흑인 피해자의 사진만 집중적으로 보도해 자칫 한인이 증오 범죄의 대상이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가주한미식품상협회 박종태 회장은 "4.29 폭동 15주년을 일주일 앞둔 시점에서 주요 언론들이 예전 로드니 킹 사건 이후 한인 주류 소매점 여주인이 흑인 소녀를 총으로 살해한 장면을 계속 보도, 흑인들의 분노가 한인들을 향했던 쓰라린 기억이 있다"며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타인종 고객이 많은 세탁업계나 라틴계 직원이 많은 의류업계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가게를 하는 한인들은 고객들의 시선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일부 한인 업주는 카운터에 백인 또는 라틴계 직원을 세워놓고, 자신들은 당분간 가게 뒤쪽에서 일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미주중앙일보=박상우.이재희.황준민.서기원 기자

◆ 증오 범죄(hate crime)=자신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이유 없이 증오하고, 폭언.폭력과 테러를 가하는 범죄를 말한다. 소수 민족과 특정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목표물이 되곤 한다. 미국 KKK단이 흑인을 비롯한 유색 인종을 공격하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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