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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격 사건이 '남 일' 같지 않은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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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18일 오전 경기도 김포외고의 도서실. 컴퓨터 앞에서 고2 학생 서너 명이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 사건 소식을 챙기고 있었다. 우연히 이들의 대화에 합류한 장두수 교장은 "상심하지 말자. 우리가 열심히 하면 어려움을 이겨나갈 수 있다"고 달랬다. 그러나 그 역시 마음이 무거웠다.

장면 #2 같은 날 국회 안팎에선 종일 애도와 유감 표명이 이어졌다. 24일째 단식 농성 중인 열린우리당 천정배 의원도 있었다. 오후엔 유재건 의원 등 열린우리당 의원 세 명이 빌 스탠턴 주한 미국 부대사를 찾아갔다. 스탠턴 부대사는 "정신적으로 불안정한 사람이 벌인 사고일 뿐"이라고 했다.

버지니아공대 총기 난사는 미국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이 '남의 일 같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범인이 한인 1.5세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연세대 심리학과 황상민 교수는 "세계화.국제화의 또 다른 체험"이라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유학생을 미국에 보낸 한국' '미국 유학생 10만 명-재미 동포 200만 명 시대'다. 사람들이 이리저리 얽힌 인연과 경험으로 인해 버지니아공대 사건을 '국내 사건'처럼 느낀다는 것이다. 황 교수는 "매년 초등학생 수만 명이 어학연수를 떠나고, 미국 영어시험인 토플 때문에 대란이 일어날 정도로 미국은 우리 교육의 또 다른 현장"이라며 "그곳에서 학살이 벌어진 셈이니 누구나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라고 했다. 한양대 교육학과 정진곤 교수는 "아이들을 유학 보낸 부모들은 특히 자신의 자녀 또한 부적응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하는 절실한 마음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교육위의 이주호 의원은 "미국의 학교 폭력은 우리의 교육 문제가 될 정도로 한국과 미국은 안방화됐다"고 했다.

교육뿐 아니라 비즈니스에서도 버지니아공대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다.

미국 내 '혐한(嫌韓) 감정'이 형성돼 현실적 불이익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나온다.

기업에선 당장 "한국 제품 이미지가 나빠지는 게 아니냐"라며 우려하고 있다. "미국 내 공항 검색이 더 까다로워질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정치권에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미국 비자 면제 프로그램 가입 등 한.미 간 현안 처리에 영향을 미칠지 주목하고 있다.

외교통인 열린우리당 정의용 의원은 "특정 개인의 범죄여서 한.미 관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진 않을 것"이라면서도 "미국인의 일상에서 한국인 이미지가 나쁘게 나타날 수 있는 만큼 양국 정부 간 긴밀한 대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고정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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