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청해고원 3,000m 횡단 길(상)|해발 3,250m에 절경의 청해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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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히말라야클럽의 박철암 회장(73·경희대명예교수)은 지난해 가을 등반탐험대 10여명과 함께 한국 최초로 중국루트를 통한 히말라야 고봉원정에 나선바 있다. 박 회장 일행은 당시 기후의 악조건으로 동성에는 실패했으나 육로로 황산를 거쳐 티베트의 수도 라사까지 들어가는 등 중국 서역일대를 여행하는 경험을 가졌다. 30여 년간 8회의 히말라야원정기록을 갖고 있기도 한 박 회장의 티베트고원 여행기를 3회를 나누어 싣는다.
한국히말라야클럽에서는 91년 7월 중국 등산협회로부터 시샤팡마봉(8, 012m)과 존뇌유봉(8,201천) 등산허가를 받았다. 등반시기는 10월, 대원은 12명으로 구성하고 코스는 중국 사천성의 성도에서 티베트의 수도 라사를 경유, 입산하기로 되었다. 그러나 본 대는 한국 최초로 중국영토에서 등산을 시도하게 되는 관계로 미지에 대한 탐험도 같이 수행한다는 계획으로 팀을 두 파트로 나누어 행동하기로 했다. 그래서 등반대는 성도에서 라사를 거쳐 베이스 캠프에 들어가고 탐험대는 서역의 청해성을 돌아 초오유 베이스 캠프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우리는 20세기의 마지막 남은 지구의 오지 청해성을 탐험한다는데 가슴 설레지 않을 수 없었다.
등반대는 9월 25일 먼저 출발하고 탐험대는 9월 27일 서울을 떠나 중국의 서안으로, 다시 서북항공편으로, 난주를 거쳐 기차로 감숙성의 성도 서령으로 향했다.
중국에서 기차를 타고 서역을 간다는 것은 퍽이나 호기심 있는 일이라 하겠다. 우리가 탄2등 실은 의외로 의자 커버도 깨끗하고 산뜻했으며 중국인승객이 10여명 있을 뿐 차안은 텅 비어 있었다. 나는 서안에서 가지고 온 황색석류열매를 먹으면서 이국의 가을 풍경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조용한 차 속에서 누군가가 중국말로 황허(황하) 라고 소리쳤다. 차안은 갑자기 황하를 보기 위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소란해졌다. 나도 황하를 보기 위해 창가로 옮겨 앉으며 밖을 보니 과연 불모지 척박한 대지에 한줄기의 누런 흙탕물이 구비쳐 흐르고 있지 않은가.
처음 보는 황하. 동양문명의 발상지 황하를 이렇게 쉽게 기차에서 만나볼 줄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다.
황하는 풀 한 포기 없는 황토 산이 중첩된 협곡을 빠르게 흐르기도 하고 때로는 넓은 초원을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나는 반가움과 아쉬움에 황하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눈길을 뗄 수가 없었다. 강가에 인가가 모여있고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루터로 달려가 강 위에 떠있는 소가죽 배를 타고 나루를 건너보고 싶은 충동이 솟아올랐다.
중국 서역은 토질이 박해서 자생력이 강한 미루나무를 심고 있었다. 미루나무가 있는 곳엔 인가가 있고 때는 가을이라 단풍이 황금빛으로 물들어 눈길을 끌었다. 척박한 황토 산과 황량한 초원, 강 안에서 양을 치는 정경과 장인들의 보리타작하는 모습은 마치 별세계에 온 듯한 느낌을 주었다.
문득 옛 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서령성에 달은 있으나 황량한 대지에 봄은 없구나(청해성두공유월, 황사적리본무춘)」.옛 시인이 묘사한대로 서역은 삭막한 풍경뿐이었다.
우리를 태운 서북 행 기차는 어느덧 서령에 도착했다. 서령은 청해성의 수도로 해발 2천2백m의 고원도시다. 중국에는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대자연 걸작의 절경들이 수없이 있는데 바로 그 하나가 중국에서 제일 큰 함수호(짠물호수)인 청해호다. 호수의 면적은 4천5백83평방m, 해발 3천2백50m의 고원에 바다와 같은 거대한 호수가 있다. 나는 평소 세상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이 비경의 호수를 한번보고 싶었고, 또한 옛날 문성공주가 서장으로 시집가던 애환이 서린 길을 찾아보고 싶었던 것이다.
10월 2일 아침 서령을 출발하여 청해호까지는 1백80km. 도중 중국 6대 사찰 중의 하나인 탑이사를 둘러보고 유명한 청장공노로 들어섰다. 서장으로 통하는 길은 오직 청장공노 하나밖에 없으므로 차도는 아스팔트로 잘된 편이나 티베트로 가는 군 트럭이 많아 무엇인가 긴장감이 돌고 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오후 4시, 드디어 청해호에 도착했다. 우리는 호숫가 방갈로에 짐을 풀고 호수로 나갔다. 정말 창해와 같은 넓은 호수였다. 이 높은 고원에 호수가 있다니 자연의 위대함에 경탄하며, 석양이라 호수는 푸른 색깔에서 검푸른 색으로 변하여 더욱 장대함을 보여주고 있었다.
본시 청해호는 바다와 같이 크다고 해서 서해라고 부른 적이 있었고 또한 장어로는 착온파라고도 하였는데 그것은 청색의 호수라는 뜻이다. 한여름의 기온이 15도라고 하니 이상적인 피서지라고도 하겠다. 호수에 오리가 있는 것으로 보아 물고기가 있을 것 같아 관리인에게 물어보니,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황어와 빙어가 유명하다고 한다. 빙어는 우리 나라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이 호수에도 많이 있다고 했다. 11월 결빙기에는 사람들이 빙어 잡이로 활기를 띤다고 한다.
태공들은 직경 30cm정도 얼음을 뚫고 구멍으로 횃불을 밝게 비춰주면 불빛을 좋아하는 빙어들이 몰려와 구덩 밖으로 뛰어나와 힘 안들이고 빙어 잡이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황어는 이 호수에만 있는 물고기로 그 맛이 신선하여 청장고원의 독보적인 특산물이라고 한다. 청해호의 또 하나의 명물은 조도다.
호수 서북쪽 삼각주지점에 크고 작은 섬이 두 개 있는데 봄이 되면 인도양의 난류가 이동하면서 10여만 마리의 철새들이 히말라야산맥을 넘어 청해호를 찾아와서 번식한다. 그러나 섬의 크기가 4·6평방m밖에 안돼 늦게 도착한 새들은 앉을 자리가 없어 인근 초원에 흩어져 집을 짓는다고 한다.
사람은 5전m 지점에서도 숨이 차 헐떡이는데 새들은 8천m의 히말라야 고공을 날아 이곳에 온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자연의 이치가 신비롭기만 하다. 박철암<경희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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