옐친 내각이 흔들린다/부총리 3명 사임의 배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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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보수파 대응위한 보호작전 추측/내각 전면개편 위한 신호탄설도
러시아내각이 흔들리고 있다.
지난 2일 예고르 가이다르 부총리가 겸직하고 있던 재무장관직에서 물러난데 이어 3일 겐나디 부르불리스 제1부총리가 사임했다.
현재 모스크바에서는 이들의 사임을 놓고 옐친 대통령이 현 내각을 보호하기 위해 조삼모사의 정치적 술수를 쓰고 있다는 주장과 실제로 내각개편을 앞둔 신호탄이라는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내각보존작전이라고 주장하는 분석가들은 가이다르 부총리등이 비록 장관직 혹은 부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여전히 옐친 대통령의 측근으로 남아 실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가이다르는 경제담당 부총리직을 고수했고 부르불리스와 샤흐라이도 각각 국무장관과 대통령 법률고문자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어 여전히 옐친 대통령 곁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따라서 부총리직 사임은 내주 회의에 들어가는 인민대의원대회의 현 내각사퇴주장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대보수파 대응작전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특히 부르불리스 제1부총리는 유리 페트로프 대통령비서실장등과 함께 에카테리나부르크(구 스베들로프스크) 마피아라 불리는 옐친 대통령의 핵심친위세력이다.
가이다르 부총리는 경제개혁의 중추입안자로 서방선진 7개국이나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두터운 신임(?)을 받고있다.
따라서 서방의 경제지원이 아쉬운 옐친 대통령이 그를 쉽게 버리기 어려운 형편이다.
인테르팍스통신·이즈베스티야·로시야 등 러시아 대다수언론의 정치담당 분석가들은 이같은 내각보존작전이라는 쪽에 더 많은 의견을 보이고있다.
반면 내각개편을 위한 신호라는 주장은 모스크바의 외교가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와 같은 주장의 논리는 옐친 대통령이 현재 헌법개정과 대통령독재를 구상하면서 우선 제6차 인민대의원대회에서 헌법개정안을 통과시킨 다음 자신이 겸직하고 있는 총리직을 포함한 내각의 전면개편을 시도할 것이란 분석이다.
이같은 분석은 옐친 대통령·루츠코이 부통령·부르불리스 부총리 등이 정치적으로 러시아 민족주의 세력을 등에 업고 강력한 대통령의 권한을 집행할 집행기구의 구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는 전망을 기반으로 하고있다.
이들은 이같은 관점에서 3일 하스불라토프 최고회의의장이 지금까지와는 달리 이번 「제6차 인민대의원대회」에서 『헌법개정등 현안이 큰 무리없이 통과되길 희망한다』고 한 발언을 상기시키고 있다.
헌법개정·내각개편을 둘러싸고 이미 옐친 대통령과 하스불라토프 의장·루츠코이 부통령 등이 모종의 사전합의를 했다고 반증되는 조짐이기 때문이다.
한편 드네스트르지역,크림지역,타타르 자치공화국,체첸­잉구슈 자치공화국 등 민족분규지역의 긴장상황이 최근들어 러시아언론에 의해 대대적으로 강조되고 있고 또 실제로 긴장고조가 조장되는 점도 우연만은 아닌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이같은 분석이 현실화되면 경제개혁은 지속된다 하더라도 정치적으로는 러시아 민족주의를 앞세워 매우 경직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모스크바=김석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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