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의 바람직한 변신/권영민 사회1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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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1일 대법원에 게시판이 새로 생겼다.
대법원 1,2호 대법정앞에 나지막히 걸린 이 게시판은 해당사건주심 대법관별로 재판을 앞둔 민·형사,특별소송사건의 사건명과 사건번호 등을 일목요연하게 알리기 위한 것.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게시판은 그러나 대법원이 생긴후 처음 만들어진 것으로 사법부의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
이 게시판은 재판이 열릴때마다 자식의 형사사건 상고심을 방청하러온 촌로에서부터 판결문을 송달받기전 승·패소 여부를 확인하려는 변호사사무실 직원에 이르기까지 수 많은 민원인이 법정을 찾아 다닌다는 담당직원의 말을 무심코 듣지 않은 한 법원행정처 관계자에 의해 만들어졌다.
매월 둘째,넷째주 화·금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두개의 법정에서 선고공판만 열리는 대법원재판의 법정을 찾기 위해 민원인이 헤맨다는 사실을 대법원 관계자들이 이해하고 대책을 세우는데 40여년이 걸린 셈으로 지금까지의 위를 향한 사법행정이 아닌 아래를 향한 사법행정이라는 발상의 대전환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최근 대법원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대법원은 지난달 95년으로 다가온 서울 서초동 법조타운으로의 대법원 이전을 앞두고 대법원장실의 천장높이를 다른 대법관실보다 높여 설계한 당초 방침을 변경,똑같은 높이로 조정했다.
건설본부측은 당초 외빈영접 기회가 잦은 사법부 수장으로서의 대법원장 집무실 및 접견실에 달게될 샹들리에 높이를 계산,천장높이를 높였다가 「대법원장도 합의에 참여하는 대법관중 1인에 불과할 뿐」이라는 현역대법관들의 사려깊은 중의를 반영,설계를 변경한 것이다.
뿐만 아니라 대법원은 93년말부터 집에 앉아 전화 한통화로 재판날짜 및 배당재판부 등의 안내를 받을 수 있는 「자동음성정보 전산망」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민원인의 불편을 해소하려는 노력이나 이같은 서비스를 준비하는 사법부의 자세는 뒤늦은 감이 있지만 「보수」의 상징기관인 법원으로서는 바람직한 방향전환으로 보여여간 반가운게 아니다.
모든 국민이 법률전문가가 아니라는 전제아래 펴나가는 사법행정은 공정한 재판결과와 함께 사법부에 대한 신뢰와 존경을 돈독히하는 첩경이기 때문에 작은 게시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 법원직원과 천장높이를 낮춘 대법관,전산망 개발을 위해 밤을 지샌 법관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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