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봄 임금협상 난항 예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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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본격 임금 협상 철을 앞두고 노동계가 정부의 총액 임금제 강행 방침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섬에 따라 올 봄 노사 관계가 긴장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각 기업과 단위 노조에서는 가뜩이나 총액 임금제가 생소한데다 정부와 노동계의 한판 힘 겨루기가 빚어질 전망까지 보이자 일단 협상 자체를 미루면서 눈치를 보고 있어 임금 협상 실적도 유례없이 부진한 실정이다.
노총은 지난 23일 본부 국·실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사 대책 회의를 열어 정부가 총액 임금제를 철회할 때까지 전국 산하 사업장의 임금 교섭을 중단키로 잠정 결정했다. 노총은 31일 산별 연맹 대표자 회의에서 추 인을 받는 대로 전국 7천5백여 개 회원사 노조에 임금 교섭 중단 지침을 시달한다는 방침이다.
전노협 등 4개재야 노동 단체와 70개 정부 투자·출연 기관 노조, 현대 그룹 노동 조합 총 연합 등도 27일 기자 회견을 통해 정부의「총액 임금제 철회를 요구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이 총액 임금제 저지를 위한 전국 노동조합 대책 위원회」를 구성, 가능한 모든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전노협 등은 우선 지난 22일부터 1천4백34개 중점 관리 대상 사업장 노조를 대상으로 전개하고 있는 총액 임금제 철회 서명운동을 4월10일까지 끝내고 이날 이들 노조 대표자 회의를 개최, 구체적인 투쟁 일정과 방법을 확정 짓기로 하고 노총에 동참을 제의했다.
전노협 등은 또 정부 당국·전노협·업종 회의·노총·경총 등 이 한자리에 모여 임금 구조 개선과 올해 임금 인상 수준에 대해 협의를 갖자고 제안하고 이 방법 외에는 극한 대립을 피할 길이 없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노총과 재야 노동계는 지난해 가을 총액 임금제 시행 발표가 나온 직후부터 이를 「노동자의 회 생만을 강요하는 임금 억제책」으로 규정, 반대해 왔으나 극한 투쟁까지 불사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임금 협상 철에 접어든 이 달 들어 정부 투자·출연 기관 노조들이 공무원의 사실상 두 자리 수 임금 인상을 문제삼고 나서고 중점 관리 대상 사업장에 상당수 저임금 업체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데다, 14대 총 선에서 민자당이 참패하고 총액 임금제 철회를 공약으로 내건 민주당이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의 호재가 연달아 발생함에 따라 분위기가 돌변, 적극 투쟁을 외치고 나선 것이다.
공공 부문 노조들은『올해 공무원 보수 규정을 토대로 표본 조사를 한 결과 공무원 임금 (91년 평균 임금 총액 기준 1백4만원)이 갖가지 편법에 의해 총액 기준 16·2% 인상된 것으로 나타났다』며『공무원 임금은 올릴 만큼 올리면서 이보다 임금 수준이 높지 않은 우리에게는 5%를 강요하는 근거가 뭐냐』고 주장하고 있다.
총무처가 이에 대해『공공 부문 노조들의 주장은 잘못된 계산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할 뿐 구체적인 반박 자료를 내놓지 않은 점이나 그 동안 민간 대기업 수준으로까지의 공무원 임금 인상이 대통령 공약 사업으로 추진되어 왔다는 점 등으로 미뤄 공공부문 노조들의 주장은「얼토당토않은 것」으로 몰아 붙일 수 없는 구석이 있다.
또 중점 관리 대상 사업장에 섬유·의복·목재·고무 등 대표적인 저임금 업체가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는 주장도 노동부로부터『마땅한 임금 통계 자료가 없는 탓에 기업 규모를 위주로 선정하다 보니 일부 잘못된 부분도 없지 않다』는 시인을 얻어냈다.
정부는 이처럼 궁지에 몰리면서도 총액 임금제를 예정대로 실시한다는 방침에서 한 걸음도 후퇴하지 않고 있다..
노동부는 중점 관리 대상에 들어 있는 저임금 업체에 대해서는 실태 조사 후 5% 초과 인상 시 부과하게 되어 있는 제재 조치를 면하게 해주겠다고 발표하고 노총 등을 상대로 막후 무마 작업을 벌이는 한편 4월1일부터 15일까지 서울·부산 등 8개 지역에서 장·차관이 직접 참석하는 노·사·정 간담회를 개최, 임금 교섭을 독려할 계획이다. 청와대에서도 전국구 국회의원이 된 장수 각료 최병렬 노동부 장관을 총액 임금제의 착 근이라는 막중한(?)임무 때문에 총선 후 개각 대상에서 제외시킬 만큼 강한 집념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노동계가 이처럼 한치도 양보 없이 평행선을 달리는 가운데 총액 임금제 시행 문제는 올해 노사 관계를 불안 속으로 몰아 넣을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동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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