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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김수현표 불륜녀' 안방을 달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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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언어의 마술사' 김수현 작가가 새로 내놓은 SBS 월화드라마 '내 남자의 여자'(정을영 연출)의 기세가 심상치 않다. 방송 2주차인 10일 고현정 주연의 '히트'를 따라잡으며 월화드라마 시청률 1위에 올랐다(17.1%, TNS미디어코리아).

'내 남자의 여자'는 김 작가가 '부모님 전상서' 이후 2년 만에 선보인 창작극. 그간 방영된 SBS '사랑과 야망' '눈꽃'은 리메이크작이었다. 남편의 자살로 홀로 된 김희애(극중 화영.사진(左))가 천사표 친구 배종옥(지수.(右))의 남편 김상중(준표)과 불륜에 빠지는 내용이다. 마르고 닳도록 우려먹은 '불륜' 소재다. 그러나 김수현이다. 만만치 않은 긴장감과 '포스'가 살아 있다.

입심이라면 어디 내놔도 지지 않을 인물들이 쏟아내는 뼈 있는 독설이 듣는 이들을 흠칫하게 할 정도다. 인물들의 갈등은 브라운관을 찢어버릴 듯 작열한다. 드물게 팜므 파탈에 도전한 김희애.배종옥.하유미 등 김수현 사단 3인방도 화제다.

물론 비판도 있다. "너무 자극적이다" "불륜을 미화하지 말라" 등의 지적이다. 불륜 사실을 안 배종옥의 언니 하유미(은수)와 김희애가 몸싸움(10일 방영분)을 벌이는 대목에선 안방극장의 수위를 넘었다는 비판이 나왔다. 그러나 물에 물 탄 듯 밍밍하면 김수현 드라마가 아니다. 극도로 통속적이거나 과장된 갈등 속에서 맨얼굴의 인간을 그려내고, 삶을 통찰하는 게 김수현 아니었던가.

# 첫 회부터 숨차다. 역전개의 힘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속사포 대사와 빠른 전개는 여전하다. 이번에는 역(逆)전개 방식도 택했다. 남녀가 도덕적으로 저항하다 불륜에 빠지고, 그 사실이 알려지는 통상적 방식을 피한 것이다. 친구 남편, 아내 친구와 바람피우게 된 '돌 맞을' 사연은 일단 생략이다. 첫 회에 당장 불륜이 들통난다(그것도 직설적인 성격에, 바람기 많은 남편 때문에 불륜에 대해서는 히스테리컬한 하유미에 의해서다). 상황 설명하고 인물 이해시키느라 초반 1, 2회를 끌고 가는 타 드라마와의 차이다. 첫 회부터 강펀치다.

# 막강 캐릭터 & 명대사

드라마는 단순히 불륜의 과정을 그려가는 대신, 불륜에 대처하고 그것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을 보여준다. 단순한 불륜 드라마가 아니라 불륜을 매개로 한 인간 드라마에 가깝다. 캐릭터들의 차이는 뉘앙스를 절묘하게 살린 대사와 맞물린다. 가령 김희애는 배종옥에게 "행복하니?"라고 묻고, 배종옥은 "편안하다"고 답한다. 김희애와 배종옥의 대립은 '내 남자'를 뺏고 빼앗기는 관계가 아니라, 욕망에 충실해 행복하려는 여자와 자기를 억제해 화목을 도모하려는 여자의 대립이다. 두 가지 삶의 방식이 충돌하는 셈이다.

이들의 대립은 요즘 유행하는 '쿨'과 거리가 멀다. 물고 뜯는다. 가식적인 패션처럼 '쿨'하기보다 솔직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악다구니 치는 게 진실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물론 선악의 이분법도 없다. 서로 다른 '입장'이 있을 뿐이다. 김희애는 악녀로 정형화되지 않는다. 남편과 가정을 신주 단지 모시듯 해온 배종옥의 대처 역시 당차다.

#베테랑 연기

김수현 사단 배우들이 출동하되 기존 이미지를 뒤집고 비틀었다. 김수현이 가장 늦게 찾아냈으나, 최근 가장 애정을 퍼붓고 있는 김희애는 모처럼 요부 역할을 맡았다. 결혼 후 드라마나 CF 속에서 보여온 행복한 주부 이미지를 깬 파격이다. 그는 '뽀글이' 파마와 란제리 차림에 거침없는 몸 연기를 하며 "모처럼 내 안의 여자를 발산할 수 있어 좋다"고 말한다.

배종옥도 반대다. 평소의 지적이고 똘똘한 이미지 대신 밝고 헌신적인 주부 역을 맡았다. 거침없는 말과 행동으로 폭발하는 하유미의 연기는 때론 아슬아슬 위험수위를 타지만, 보는 이들을 후련하게 하는 쾌감이 있다.

# 절반의 성공? 아직은 시작?

'내 남자의 여자'는 백전노장 김 작가의 새로운 모험이다. 2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이기도 하고, '완전한 사랑' '부모님 전상서' 등 최근 치중했던 가족드라마에서 벗어나 '불륜'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환갑을 훌쩍 넘긴 작가가 초기의 테마로 돌아간 느낌도 준다. 아직도 녹슬지 않은 역량과 에너지가 발휘된 초반부는 성공이다. 극단적 상황의 절박성이 시청자의 눈과 귀를 확실히 빨아들인다. '진짜' 드라마는 이제부터다. 육탄전 같은 감정 폭발을 넘어 불륜과 삶에 대한 노작가의 통찰을 기대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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