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도요대한 학사모 쓴|63세 교포할머니 강태순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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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환갑을 넘긴 재일동포 할머니가 천신만고 끝에 대학을 졸업, 화제가 되고 있다. 화제의 인물은 23일 일본도요(동양) 대학 사회학부를 졸업한 강태순씨(63·동경도풍도구). 그녀는 야간 중·고·대학 등 11년간의 학창생활을 마감하는 이날 졸업식장에서 남편 김경준씨(7l)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강씨의 졸업논문은 학교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했던 가난한 소녀시절부터의 인생역정을 담은「나의 생애, 학습의 길」. 그녀는 『배우는 것이 곧 살아가는 힘이 됐다』면서 그 동안의 삶을 되돌아봤다.
대학 2학년 때부터 쓰기 시작한 그녀의 졸업논문은 2백자원고지 1백20장분.
논문은 고향 제주도의 소녀시절부터 시작된다. 일제 식민지 시대이던 당시 곡식의 대부분을 공출로 빼앗겨 그녀의 집은 말 그대로 찢어지게 가난했다.
강씨는 물긷기와 밭농사를 거들어 번 학비로 간신히 국민학교를 졸업했다. 그녀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일본으로 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 해방직전인 16세 때 단신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
그후 2차대전이 끝나 일본도 극심한 혼란기에 빠졌으나 강씨는 일본에 남았다. 그녀는 그해 같은 고향출신인 현재 남편 김씨와 결혼했다.
이들 부부는 관동·동북·북해도 등지를 전전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집을 빌릴 때는 언제나 한국인이라는 벽에 부딪쳐 눈물을 흘려야했다. 또 남북을 인위적으로 갈라놓은 정치라는 것이 주문처럼 따라 다녔다. 그 동안 6·25가 터지고 제주도 4·3사건, 재일동포 북송 등으로 몇 안되던 친척이나 친구들은 남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그녀는 『이 나이에 무엇 때문에 대학을 졸업하려 하는가를 생각했을 때, 그 근원에는 민족차별이라는 벽과 남북의 정치적 대립을 뛰어 넘어야겠다는 의식이 깔려있었다. 정치와 역사를 건드리지 않고 재일동포의 인생을 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강씨가 5명의 자녀를 다 키워 놓은 뒤인 지난 81년(52세) 중학교 야간부에 입학, 고교·대학의 문을 두드리게 된 것도 이같은 벽을 뛰어 넘어서자는 목적에서였다.
강씨가 대학에 입학하자 각계로부터 격려의 편지가 쏟아졌다. 그녀는 『편지를 읽고 식민지시대를 살아간 서민들은 모두 어떤 벽에 부딪치며 살아왔다는 것을 느꼈다.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것을 통감했다』고 말했다.
남편 김씨도 부인 강씨에게 자극을 받아 자신의 일대기를 쓰기 시작했다.
강씨는 언젠가 남편과 함께 자신들의 과거사를 출판, 젊은이들에게 읽히게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그것이 자신이 배운 것을 사회에 돌려주는, 작은 보탬이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동경=이석구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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