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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남규는 과연 "탁구천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유남규(동아증권·사진)가 일단 마음만 먹으면 당할 자가 없다.』
불과 한달 전인 지난달 22일 제7회 탁구최강전 1차 대회 단체전에서 김택수(대우증권)의 파워드라이브에 밀려 맥없이 2-0 (21-12, 21-13)으로 허물어졌던 유남규가 마치 이 같은 속설이 정설임을 입증하기라도 하듯 독한 마음먹고 출전한 19일 최종단체결승에서 김택수를 보란 듯이 2-0으로 완파, 「역시 유남규는 탁구신동」이란 탄성을 자아낸 것이다.
유는 지난해 12월 제45회 전국종합선수권대회 때에도 고질적인 어깨, 허리부상으로 6개월만에 출전했으면서 김택수를 두 차례나 연파, 탁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었다.
정말 유남규는 마음만 다져 잡으면 언제든지 김택수를 이길 수 있는 것일까.
아직까지는 그렇다는 것이 이날 경기를 지켜본 많은 탁구인들의 시각이다.
첫째,「탁구 IQ 200」이라는 유남규의 재기 발랄한 꾀를 김택수가 당해내지 못하고 있는 까닭이다.
「꾀돌이」유남규는 타이틀이 걸리지 않은 예선전성격의 1차 대회 단체전에서 김택수와 맞붙게되자 자신의 주특기인 거의 구분이 가지 않는 한가지 폼에서 구사되는 회전과 무회전의 서브를 사용치 않았다.
결승 등 중요경기를 앞두고 김택수에게 자신의 주특기에 대한 적응력을 키위주지 않겠다는 의도에서였다.
그 결과 유남규는 1차 대회에서 김택수에게 하프스코어정도로 참패하는 수모를 겪었지만 최종결승에서는 변화무쌍한 서브로 김택수를 농락, 경기의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다.
이 같은 유남규의 꾀에는 항상 고도의 심리전이 병행된다.
이날도 1세트 초반부터 절묘한 서브와 짧은 리시브로 김택수의 파워드라이브를 사전 봉쇄, 4∼5점차 앞서나가던 유는 18-17, 1점차로 쫓기게되자 테이블을 수건으로 닦는가하면 서브를 넣으려하던 김택수의 공을 가로채(?)깨지지 않았나 검사하며 한참동안 시간을 끌어 추격의 불을 당기던 김의 기세에 찬물을 끼얹고 말았다.
2세트에서도 리드 끝에 19-19 동점까지 허용, 위기에 몰리자 마치 허리가 아프다는 듯 몇 차례 허리운동을 하며 엄살(?)을 피우더니 돌연 서브를 넣고는 언제 허리에 이상이 있었냐는 듯이 비호같이 몸을 틀어 빠른 직선드라이브를 성공, 20-19로 다시 앞서며 흐름을 자기페이스로 돌려놓았다.
탁구인들은 이날 김택수가 부진했다기 보다는 유남규가 특유의 노련한 경기운영에 근래에 보기 드문 파이팅을 과시하며 큰 경기에 강한 진면목을 유감없이 발휘, 최근 월드올스타 서키트 챔피언에 오르는 등 절정기의 기량을 뽐내던 김택수를 물리쳤다는 점에서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지난해 지바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한개의 메달도 따내지 못하는 좌절을 겪었던 유가 아끼던 승용차를 처분하는 등 절제된 생활과 꾸준한 체력훈련으로 예전의 기량을 회복, 올림픽 금메달에의 꿈을 다시 한번 부풀릴 수 있게 된 때문이다.
반면 김택수는 이날 유의 심리전에 말린데다 비장의 무기로 이따금 써먹어야 할 백스매싱을 초반부터 남발, 정작 승부를 걸어야할 시점에선 위세를 떨치지 못했고 백스매싱에 연연, 자신의 장기인 포핸드드라이브 선제를 잡지 못한 점은 깊이 반성해야할 대목으로 지적됐다. <유상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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