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4월 5일 중국행을 결심한 저우는 교토의 경승지 아라시야마(嵐山)에 올라 한 편의 시를 남긴다. 안개처럼 흩뿌리는 봄비를 맞은 벚꽃이 덧없이 떨어지는 광경을 보면서 21세의 저우는 이렇게 읊었다. "소슬비 내리고 안개 짙더니/구름 뚫고 비친 한 줄기 빛 더욱 아름다워라 (중략) 세상 모든 진리는 좇을수록 알기 어려워도/우연히 본 한 점 광명, 참으로 아름답도다."
훗날 프랑스 유학을 거쳐 혁명 지도자가 된 저우는 중국의 초대 총리가 됐다. 72년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와 중.일 국교 정상화에 서명했다. 그런 연유로 일본에서도 그의 인기는 다른 중국 정치인의 추종을 불허한다. 그가 젊은 시절 '우중람산(雨中嵐山)'을 읊었던 자리에는 일본인이 세워준 시비가 서 있다.
지난주 중국 총리로는 6년 반 만에 일본을 방문한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저우의 시비에 헌화했다. 빠듯하기 짝이 없는 일정 중에도 원 총리는 시비 방문을 강력히 희망했다고 한다. 저우가 그랬던 것처럼 과거를 극복하고 새로운 양국 관계를 맺어 나가겠다는 결의가 엿보인다. 원 총리는 감개무량한 표정으로 "저우 총리는 중.일 우호의 선구자다. (그가 싹을 틔운) 우호의 꽃은 한결 더 빛날 것"이라고 말했다.
공교롭게도 저우와 원 총리 사이엔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은 톈진의 난카이(南開)중학 선후배 사이다. 평생 자신의 옷을 수선해 입을 정도로 소탈했고 중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인민과 함께했던 저우의 이미지는 지금 '서민 재상'으로 불리는 원 총리가 이어받고 있다.
76년 타계한 저우는 생전 "벚꽃 피는 봄에 다시 한번 일본을 방문하고 싶다"고 말했다. 유학 시절 이후 60년 동안 저우는 그 소박한 꿈을 이루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그 소망을 '제2의 저우언라이'를 꿈꾸는 원 총리가 대신 실현한 것일까.
예영준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