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책 vs 책 … 승자는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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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식의 충돌-책 vs 책
권정관 지음, 개마고원, 291쪽, 1만2000원

상반된 주장을 담은 책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그 주제가 상당한 논쟁거리가 된다는 뜻일 게다. 지은이는 9가지 주제에 걸쳐 그러한 책들을 찾아 짝을 지어낸다.

예로 세계화를 이 시대의 미덕이라고 믿는 토머스 프리드먼의 '렉서스와 올리브 나무'와 20%의 성공과 80%의 실패를 가져올 것이라며 경계하는 독일 언론인들의 '세계화의 덫'을 나란히 대비한다. 그러나 '문화평론가'를 자처하는 지은이는 상반된 주장을 펴는 저자들의 논점을 되씹고 음미해 책끼리 싸움을 붙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시각과 논리를 바탕으로 각 논점의 의미를 새롭게 파악하고 평가한다. 즉, 프리드먼은 세계화를 무턱대고 추종하는 게 아니라 지구촌이 거기에 맞춰 변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자고 주장한 것이며, '20대 80'의 논리를 펴는 독일 언론인들은 세계화에 반대한 게 아니고 그 부작용을 경계한 것이라고 설파한다.

미국 정치학자 새무얼 헌팅턴이 쓴 '문명의 충돌'과 독일 국제관계학 교수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도 마찬가지다. 헌팅턴은 "소련 붕괴로 이념적 양극체제가 무너지면서 세계가 다극적 문명 대립체제로 옮아갈 채비를 차리고 있다"며 이슬람을 서구에 가장 위협적인 세력의 하나로 지목한다. 하지만 뮐러 교수는 "공산주의라는 이념의 적이 사라지자 대신 문명의 적이라는 이름으로 이슬람을 새로운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다"라고 반박한다.

이에 대해 지은이는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을 논리적 퇴행이라고 진단하고, 뮐러가 말한 공존도 인위적인 노력 없이는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고 따끔하게 비판한다.

'장남을 다시 불러들여 한국사회를 리모델링하자'는 '대한민국에서 장남으로 살아가기'와 '한국의 가정과 사회에선 남자가 지극히 부당하게 길러진다'는 '남자의 탄생'을 보면서는 한국사회에 제대로 된 남성학이 없음을 꼬집고, 동시에 권위적인 한국사회의 문제점을 질타한다.

신중국을 건설한 마오쩌둥(毛澤東)을 유토피아 건설의 영웅으로 그린 '중국의 붉은 별'과 그 신화의 허구성과 마오의 과오를 조목조목 지적한 '마오'에 이르면 착잡해진다. 둘 다 이념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프로파간다'로 지적받는 책이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전자는 홍보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혁명 건설기의 마오와 홍군을 단기간 취재한 것임을 지적하고, 후자에 대해선 마오를 일방적인 가해자로 중국 대중을 무조건 피해자로 도식화하고 있다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날카로운 비판 앞에선 이미 고전이나 준고전 반열에 오른 책들도 그 신화가 여지없이 무너진다.

'희생과 봉사의 기록'으로 통해온 슈바이처 박사의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와 혁명가가 된 의사를 다룬 '닥터 노만 베쑨'에 대한 지은이의 평가는 휴머니즘의 실천을 꿈꿨던 많은 이들을 불편하게 하다. 그들이 메스로 제거하려고 했던 세상의 환부가 아직 치유됐다고 볼 수 없다는 지은이의 지적이 우리 가슴을 많이 아프게 하기 때문이다.

채인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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