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주의 경제체제/현대일본 움직인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전시방식따라 기업 지도/종신고용등 노동윤리도 “옛관행”
일본의 쌀시장개방문제,계열거래,일벌레처럼 일하는 일본인의 생활태도가 국제적인 경제마찰의 원인이 되고 있다. 이같은 문제들은 얼핏 보기에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제국주의 시절 일본의 전시경제체제가 그 배경이 되고 있다. 식량관리법뿐만 아니라 일본특유의 행정지도·노사관계등 현재 일본을 지탱하는 중요한 경제체제에는 제국주의 시절에 만들어져 확립된 것이 의외로 많다.
밀가루등 해외에서 곡류를 수입하는 일본의 종합상사들은 농수성의 말한마디에 꼼짝 못한다. 지난 42년 만들어진 식량관리법때문이다. 이 법은 국민의 식량 수급,가격 안정을 위해 전시에 만들어졌다. 일정부는 지금도 2차대전때 만들어진 이 법에 따라 가격을 통제하고 해외에서의 쌀수입을 막고 있다. 또 밀가루수입권 등을 무기로 관련회사들을 손아귀에 넣고 좌지우지 하고 있다.
일본은행법도 지난 42년 전시중에 만들어진 것이다. 가네마루 신(금환신)자민당부총재가 『총재의 목을 쳐서라도 재할인율을 내려야 한다』고 큰소리 친 것도 이 법을 근거로 한 소리다. 이법만을 갖고 보면 일본은행의 독립성은 한국보다도 보장이 되어 있지 않다. 정부는 언제든지 정책수행을 위해 총재를 해임할 수 있다. 단 일정부가 법은 그렇다 하더라도 금융통화정책에 대해 한국처럼 간섭을 하지 않고 중앙은행에 맡기는등 운용의 묘를 살려 왔다는 점이 다를 뿐이다. 전후 몇차례에 걸쳐 근본적인 개혁움직임이 있었으나 그대로 골격이 유지돼 왔다.
일본특유의 계열거래와 행정지도도 전시중에 취해진 관행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지난 44년 일본은 군수회사로 지정된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군수회사마다 1개씩 주거래금융기관을 지정했다. 이른바 군수회사지정금융기관제도다.
한정된 자금을 효율적으로 군수회사에 융자해주자는 취지에서 생긴 것이다.
이 제도가 특정회사와 금융기관을 묶어줌으로써 기존의 재벌외 새로운 기업계열이 생겨나는 역할을 하게 됐다. 현재의 부사·삼화·흥업 등의 기업그룹은 다 이때 생겨난 것이다. 이같은 계열이 계열끼리의 배타적 거래로 발전한 것이다.
미국등 외국으로부터 일본주식회사라고 비판을 받게되는 이른바 행정지도도 제국주의 시절 전시하에 생겨난 관행이 그대로 지켜져오고 있는 것이다.
당시 일정부는 전쟁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산업별로 「통제회」라고 하는 산업단체를 만들어 이를 통해 기업에 대한 간섭을 했다. 법적 근거가 없는 간섭도 이를 통해 이뤄졌으며 이같은 관행이 전후에도 당국의 기득권으로 남아 계속 유효 적절히 쓰여지고 있다.
종신고용이나 일벌레같이 일만하는 노동윤리등 일본의 노사관계도 전시체제의 유물이라고 볼 수 있다.
일정부는 전시중 일손부족해결과 숙련공을 가능한 한 오래 중공업에 붙잡아 두기 위해 종신고용과 연공서열제를 권장했다.
이밖에 전기·철강·은행업계가 초임 및 채용시기를 같게하거나 기업별 노조제도를 유지하는 것도 전시중의 통제 또는 관행으로서 보급된 것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국가총동원체제가 실시되고 있던 전시하의 관료주도경제체제가 전후에도 그대로 남아 오늘날의 일본주식회사를 이끌어가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결국 미국을 비롯,세계 각국은 일본제국주의와 지금도 싸우고 있는 셈이다.<동경=이석구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