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 수천 명 소련으로 강제 연행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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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당시 국군포로 수천 명이 소련으로 강제 연행됐다는 미국 국방부 보고서가 공개됐다. 최근 비밀 해제된 '한국전쟁 포로들의 소련 이동'이라는 문서에 따르면 이들은 정전협정 이후 포로교환 때도 한국으로 송환되지 않았다. 1993년 8월 26일자로 작성된 이 보고서는 소련 붕괴 뒤 미국과 러시아가 공동으로 운영한 '미.러 합동 전쟁포로 및 실종자 위원회'의 조사 결과 나온 것이다. 이 보고서는 주로 러시아 측 정부문서와 관계자의 증언을 토대로 작성됐다.

북한에서 내무성 부상 겸 군 총정치국장을 지낸 강상호는 92년 11월 진술에서 "수천 명의 국군포로를 소련 내 타이가(침엽수림) 지역 등의 300~400개 수용소로 옮기는 것을 지원했다"고 밝혔다. 소련군 장교 출신인 강씨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북한에 건너가 군과 정부의 고위직을 지냈으나 러시아로 이주했다가 2000년 91세로 사망했다.

포로의 압송 경로는 크게 두 갈래였다. 하나는 북한과 인접한 소련의 포시에트에서 시베리아의 치타를 거쳐 러시아 중부 몰로토프(현재 페름)로 이송됐다. 51년 11월~52년 4월 극동지역 바다가 얼어 있을 때 이용했던 철로다.

다른 하나는 얼음이 녹았을 때 이용한 바닷길이다. 국군포로와 납북된 일부 남한 정치인은 이 루트를 이용해 극동항구인 오호츠크에서 중부 시베리아의 콜리마 수용소와 동시베리아 최북단의 반카렘 수용소로 보내졌다. 특히 반카렘으로 강제 이송된 사람은 포로와 납북자를 합쳐 적어도 1만2000명에 이르렀으며, 도로공사와 비행장 건설에 동원돼 사망률이 매우 높았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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