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선린외교 1번지'… 지금도 교류 앞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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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1년 마지막 조선통신사의 쓰시마 행렬을 그린 그림(후쿠오카 시립박물관 소장).


지난달 23일 쓰시마(對馬) 섬 남동쪽 이즈하라(嚴原)의 오후나에(お船江). 조선통신사들이 배를 대던 곳이다. 지금은 역사유적으로 지정돼 고즈넉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400년 전 이 선착장에는 조선에서 온 귀한 손님들을 구경하기 위해 사람이 구름같이 몰려들었다. "우리 일행을 보기 위해 몰려든 작은 배들이 고기 비늘처럼 보인다. 쳐다보는 사람들 모습이 꼭 고슴도치 같다"는 당시의 기행문 표현이 재미있다.

쓰시마 역사민족자료관 뜰에 세워진 조선통신사 기념비.이즈하라시는 통신사의 방문으로 이뤄진 활발한 교류와 우호관계를 21세기 한.일 우호의 지향점으로 삼겠다는 취지로 1992년 이 기념비를 세웠다.

주민들은 쓰시마가 통신사의 첫 기착지였다는 점에서 자부심이 대단하다. 조선과 중국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는 창구였기 때문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즈하라 시내에 있는 유적들은 대부분 조선통신사와 관련된 것이다.

통신사 일행이 묵었던 세이산지(西山寺)는 현재 일부 시설을 유스호스텔로 활용하고 있다. 이즈하라항 언덕배기에 위치한 이 절에는 1611년 조선과의 외교문서를 다루는 이테이안(以酊庵)이 개설됐다. 임진왜란 이후 최악으로 치닫던 양국 관계를 개선하고 선린우호를 유지하는 데 큰 역할을 한 곳이다. 본당에는 이테이안을 만든 승려 겐소(玄蘇)의 목상이 있다. 주지인 다나카는 사찰 정문을 가리키며 "저 문으로 통신사 일행이 걸어 들어왔다"고 말했다. 그는 "이 절은 통신사들과 쓰시마 번주와 학자.승려들과의 문화 교류의 장으로 활용됐다"고 설명했다. 조선과 일본 간 '성신(誠信)외교'를 주창했던 아메노모리 호슈(雨森芳州)의 묘에는 사시사철 한국 관광객들과 현지 주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도심에 있는 '쓰시마 역사민속자료관' 안으로 들어서자 통신사 행렬을 묘사한 큰 그림이 눈에 들어온다. 내부를 둘러보니 통신사들의 발자취가 절로 잡힌다. 고려판 대장경과 대반야경, 훈몽자회가 잘 보존돼 있다. 융기문(隆起文).무문(無文) 토기도 다 한반도에서 전래된 것이다. 민속자료관 안내 책자에는 "쓰시마의 문화사는 한반도와의 교류를 빼면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고 적혀 있다. 자료관 뜰에는 조선시대 열두 차례 일본을 방문한 조선통신사를 기념하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그 앞에는 통신사 행렬을 맞이하기 위해 세웠던 솟을대문이 서 있다. 태풍으로 부서진 것을 1989년 복원한 것이다.

이즈하라시 도심을 관통하는 영빈로. 500여 명의 조선통신사 행렬을 구경하기 위해 쓰시마 주민들이 이 도로를 가득 메우곤 했다.


향토사학자로 20년간 조선통신사의 발길을 추적해온 다치바나 아쓰시(橘厚志.60)는 "쓰시마는 80년부터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한 조선통신사 재현 운동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8월 첫째 주말에 열리는 이즈하라항 마쓰리(축제)에 통신사 행렬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88년에는 축제 이름을 아예 아리랑 마쓰리로 바꿨다. 항만은 물론 시내의 모든 관광 안내문이 한국어와 일본어로 쓰여 있다. 한국인 관광객은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이즈하라 시청의 쓰지 히로유키 관광교류과장은 "2003년 1만 명 남짓하던 한국인 관광객이 지난해는 쓰시마 전체 인구(3만9000명)보다 많은 4만2000명에 달했다"고 말했다.

이즈하라 시내의 쓰시마 고교는 2003년 국제문화교류반을 신설해 공립학교로는 처음으로 한국학 강의를 시작했다. 학생들은 주당 한국어 4~5시간 외에 한국 문화와 역사를 정규 교과로 배운다. 지금까지 이 학교 졸업생 20여 명이 '신세대 일본 통신사'가 돼 부경대와 동아대로 유학을 왔다. 생존을 위해 교류해야 하는 쓰시마의 사정은 400년이 지나도 별로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쓰시마=특별취재팀

◆ 특별취재팀=박소영.이승녕(국제 부문).김태성(영상 부문) 기자, 예영준.김현기 도쿄 특파원

◆ 도움말=나카오 히로시(中尾宏) 교토 조형대학 객원교수, 손승철 강원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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