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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해빙을 위한 여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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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원 총리의 방일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지난해 가을 취임 직후 중국을 방문하면서 이뤄지게 됐다. 당시 아베 총리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이해하는 듯 보였다. 물론 임기 중 참배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안 했지만 이 문제를 수긍하는 입장을 취했다.

중.일 관계는 실로 복잡하다. 일본은 지난 세기 중국에서 잔악 행위를 했으나 중국 경제가 근대화하던 시기에는 주된 협력자였다. 최근에는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사스.SARS) 퇴치를 도왔던 주요 지원국이며, 1989년의 불행한 사건 이후 중국과 고위급 접촉을 재개한 첫 서방국가이기도 하다. 일본이 중국에서 저지른 범죄에도 불구하고 중국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자로서 요구할 수 있었던 전쟁 배상금을 포기했다.

중국은 과거 일본을 용서한 것을 지금 후회할 수도 있다. 오늘날 일부 일본 지도자가 과거 잘못된 행위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아베도 위안부의 존재를 부인하려 드니 말이다. 그나마 아베가 발언 수위를 조절하고 있는 것은 미국 의회와 언론의 비난과 압력 덕분이다.

중국 속담에도 있듯 '위대한 사람은 경쟁자의 존재를 견딜 수 없는 법'이다. 하지만 현재 중국과 일본은 역사상 처음으로 세계 무대의 중심국가로 나란히 올라서고 있다. 따라서 지금은 서로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깨달아야 한다. 이는 아시아와 세계의 리더십과 관련한 문제이기도 하다.

양국을 비교하면 중국은 인적 자원이 풍부하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일본은 인구는 줄고 있으나 경제 수준은 10배 이상 우월하다. 세계 무대에서 일본은 전 세계의 정치적 신임이 필요한 상태며, 중국은 적어도 20년 안에 경제규모에서 미국을 넘어설 전망이다.

그러나 양국 사이에는 분명 경쟁.라이벌 의식이 있다. 고이즈미는 야스쿠니 참배 등의 행동으로 중국을 존중하지 않으면서도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의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중국은 일본에 그것이 희망 사항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할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경쟁은 건강해 보이지 않는다. 각자가 상대방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일본과 경제적으로는 뜨겁지만 정치적으로는 차가운 관계를 맺고 있다. 지금대로라면 자칫 경제 관계마저 냉각될 수 있다. 이는 중국 경제 발전에 해롭다. 일본은 지난 60년간 평화롭게 발전해 왔고 세계 공동체에 기여했기 때문에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얻을 만하다고 본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 희생자들로부터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해 외교 정책의 퇴보를 가져왔다.

일본이 아직도 세계 수준의 강대국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역사를 솔직하게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유형의 보수적 현실주의자인 아베의 등장으로 일본은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맞이하게 됐다. 아베는 고이즈미의 동아시아 정책 실패를 깨닫고 외교 관계 안정에 현실적 접근을 하고 있다. 아직 이웃 나라들에 믿음을 주지는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원 총리의 방일 목적은 양국 간에 해빙 무드를 조성하려는 데 있으며, 일본은 이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것으로 기대된다. 양국이 이 기회를 확실히 포착하려면 실용적인 분야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무역을 확대하고 관세를 줄이며, 에너지 협력과 환경문제 협조를 얻어내고, 안보 대화와 군사적 협조를 얻어내는 일 등에서 전략적으로 호혜적 관계를 발전시켜야 한다.

선딩리 중국 푸단대 미국학연구소장
정리=백일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