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연예인 묘한 시기에 묘하게 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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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앞뒤 꽉 막힌 권외주의 가장이 어느날 갑자기 인정 많고 합리적인 인물로 변했다.
몸소 근검절약을 실천하고 애써 불우이웃을 돕는데 인색하지 않다.
MBC-TV 인기드라마 『사람이 뭐길래』에 등장하는 탤런트 이순재(본명 이순재)씨가 요즘 보여주는 모습들이다.
평소엔 흐뭇하게만 보일 이런 장면들이 때를 잘못 만나(?) 따가운 눈총을 받게끔 되었다. 이씨가 이번 총선에 출마했고 법적으로 시한이 어떻게 정해졌건 사실상 선거운동을 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TV탤런트가 국회의원에 출마했다 해서 천직인 TV드라마에 얼굴을 내밀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렇지만 최근 부쩍 심해진 이씨의 드라마 안에서의 미화는 도에 지나쳤다. 거의 매회 꼬박꼬박 보이는 이씨의 뚜렷하고 바른 주관을 가진 사람으로의 부각은 인기인의 사전선거운동이 된다는 눈총을 받게도 됐다.
며느리가 쓰레기용 비닐봉지를 대충 치울라치면 다 채워서 버려야 한다며 「절약정신」을 강조한다. 면박만 주던 아내에게 그동안 고생했다며 큰맘먹고 다이아반지를 선물하는「자상한 남편」으로 비치는 장면도 있다.
혼수감으로 며느리가 가져온 대형TV를 양로원에 기증하며 「이웃사랑」을 몸으로 실천한다. 극의 전체 흐름상 그렇게 될 수도 있겠거니 십분 이해할 수 있는 부분들이다. 출연자는 대본대로 연기했을 따름이고 작가는 상황 설정상 필요했다는 말로 그냥 넘어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뭔가 찜찜한 구석이 남아있다. 특정 인물의 묘사가 묘한 시기에 묘하게 전개된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꼴이다.
도둑으로 오인될까봐 오얏나무 밑에서 갓을 고쳐 쓰지 말라는 옛말은 지금도 새겨들을 만한 가치가 있다.
그것은 상식이고 또 지혜이기 때문이다. 보통사람들이 『사전선거운동 냄새가 난다』고 느낀다면 그런 오해받을 일은 스스로 하지 않는 것이 또한 바른길이 아닐까.
이씨의 이 같은 이미지 고양효과를 알고도 팔짱을 낀 채 나 몰라라하는 방송사측의 무신경도 놀랍기만 하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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