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 "남북관계 투명하게" 강조하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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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베이징에서 시작된 '안희정 대북 비밀접촉' 드라마의 총연출자였음을 10일 스스로 밝혔다.

386 집권세력의 대북 비선 접촉의 성격에 대해 그동안 안씨, 이호철 청와대 국정상황실장, 이화영 열린우리당 의원과 대북 중개인 권오홍씨 간 논란이 있어 왔으나 노 대통령이 자신의 역할을 언급한 것은 처음이다.

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안희정씨의 대북 접촉은) 대통령이 특별히 지시한 것"이라며 "이는 대통령의 당연한 직무행위에 속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북한과의 비공식 대화 통로를 개설하겠다고 하는 제안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있었다. 그때마다 흘려보내지 않고 일일이 확인을 했다"며 "(이번 건은) 아무 일도 없었고 공개할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투명성 문제는 해당 사항이 없다. 정치적으로, 법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일단 자신의 지시를 받고 움직인 안씨가 곤혹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되자 그를 구하기 위해 마음먹고 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03년 취임하자마자 김대중 정부의 대북 불법송금 특검을 수용하면서까지 대북관계의 '투명성'과 '합법성'을 강조했던 노 대통령이다. '대통령 지시에 의한 비선 접촉은 법적.정치적으로 문제될 것 없다'는 그의 인식이 많은 사람에게 혼란을 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남북 간 대화와 교류에서 투명성과 합법성에 대한 강력한 요구가 있다"(지난해 12월) "정상회담에 대해 아무 시도도 하고 있지 않다"(1월)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화영 의원은 자신들이 특사와 정상회담에 대해 북측 인사와 논의했음을 줄곧 암시해 왔다. 결국 이날 발언으로 노 대통령이 대북 접촉에 대한 그의 투명성 원칙이 훼손됐다는 지적을 받아도 할 말이 없게 됐다.

유기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노 대통령이 비선 접촉을 숨기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덮으려다 힘이 부치니 이제 말을 바꾸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은 초법성 논란도 부르고 있다. 그는 비선 접촉 지시를 대통령의 '직무행위'라고 표현하면서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조순형 민주당 의원은 "안희정씨가 북측 인사를 정부에 사전 신고나 사후 승인 없이 접촉한 건 남북교류법 위반이고, 노 대통령이 안씨를 사실상 특사로 삼으면서 지명 절차를 밟지 않은 것은 남북관계발전기본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국민이 보편적으로 수용해 줄 때만 남북 관계에서 초법적인 통치행위가 성립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화 20년을 거치면서 학계에서 '어떤 조건하에선 법을 어겨도 괜찮다'는 초법적 통치행위론은 인정되지 않는게 상식이다.

◆ 밝혀져야 할 의문들=노 대통령이 비선 접촉을 지휘한 것이 드러남에 따라 한나라당은 국정조사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①비선 접촉을 진행하다 지난해 12월에 공식라인으로 전환한 이유는 무엇인지 ②방북한 이 의원이 노 대통령의 친서를 휴대했는지와 그 내용은 무엇인지 ③공식라인으로의 전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국정원 보고서 내용은 뭔지 ④30분에 불과했다는 안씨의 10월 베이징 접촉에선 과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등이 밝혀져야 할 의문점으로 남는다. 이런 의문점들은 비선 접촉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해도 아마추어적인 접근방식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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