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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도올고함(孤喊)

피리 명인 정재국의 평천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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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5일 소가 잠자고 있다는 우면산 아래 예악당에서 가산의 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고 있는 소도 껌뻑 눈을 치켜뜰 굿굿한 소리, 새벽의 기운을 가르는 첫 수탉의 울음소리와도 같은 청아한 피리 소리가 영산회상 상령산의 깊게 출렁이는 농음가락을 타고 예악당을 꽉 메우고 있는 사람들의 가슴을 저며 들었다. 가산(山)이라는 호는 성경린.김천흥 두 분께서 의논하여 지어준 것이라 했다. 그의 피리 소리가 하도 크고 장중하여 태산 같다 하여 피리 가에 뫼 산을 붙였지만, 본시 그의 선생 김준현(金俊鉉,1918~61)의 호가 가농(濃)이라, 그 농익은 기교에 대비하여 그리 부른 것이다.

가산 정재국(鄭在國, 1942~)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불우한 어린시절을 전전타가 국악사양성소에 제2기생으로 입학한다(1956). 그곳에서 이왕직아악부를 통해 전승된 정악의 정통적 수련을 거친다. 서울대 국악과에 입학할 기회도 있었지만 배울 것이 없다 생각한 그는 미순회공연단에 끼어갔다가 미국으로 토낄 궁리를 했다. 그만큼 국악인의 앞날이 캄캄하게 느꼈던 것이다. 결국 하와이에서 목덜미가 잡힌 그는 강제 소환되어 즉각 징집되었고 27사단 군예대에 들어갔다. 이 군예대에서 평생지기 대금의 명인 이생강을 만났는데 당시 웃기는 사회자가 바로 이주일 병장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비로소 가산은 그의 진정한 음악세계를 발견케 된다.

옛 고화를 보면 그림만 보아서는 중국 그림인지 한국 그림인지 구분이 잘 가지 않는다. 그러나 전통음악을 들으면 음치라도 그것이 중국 음악인지 한국 음악인지는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가야금이나 거문고 소리로써는 그 구분의 기준이 서기 어렵다. 결국 우리가 한국적 소리라고 느끼는 것은 피리다. 모든 삼현육각 관악합주의 리드 악기가 피리인 것이다. 국악의 김치맛이라고나 할까? 피리는 음역이 좁다. 그러나 한 구멍에서 도레미파솔라를 다 낸다. 김치 먹는 한국인의 목구멍과도 같은 것이다. 떨고 흘리고 휘어올리고 밀어내리는 기법이 자유자재로 이루어진다. 가산은 목피리 악장으로서 32년간(66~98) 국립국악원을 이끌었다. 그러면서 정악을 오늘의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오늘날 수제천의 세세하고 아름다운 시김새가 옛 모습 그대로가 아니요, 가산의 뱃심의 공력이 주물러 놓은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궁중음악의 단아하고 장중한 전통을 고집하면서도 가산은 이례적으로 남도의 계면이 짙게 깔린 피리 산조도 제일 먼저 만들었다(1972). 그것은 바흐의 음악을 연주하는 자가 지랄스러운 힙합을 작곡하는 것보다도 더 파격스러운 장난이다. 그리고 독주악기가 아니었던 피리로 독주회도 제일 먼저 시도했다. 그는 정(正).속(俗)의 구분을 거부하면서도 정악의 정통을 고집하였다. 그리고 끊임없이 새로운 것에 도전했다. 조선의 명인 중에 가장 진보적인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역시 그는 태산처럼 장중했고 지극히 절제된 떨림을 과시했다. 나는 예악당을 떠나면서 이와 같이 읊었다. 가산지성개천하(山之聲蓋天下)! 태산 같은 가산의 피리 소리가 천하를 휘덮었다는 뜻이다.

도올 김용옥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