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법률가」가 있는 사회/최종고(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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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학에 몸담고 있으니 입학과 졸업을 연중행사같이 경험하지만 요즈음 법학교수로서 서글프고 착잡한 심정을 가눌길 없다. 입시에서 법대선호도가 높아져 문전성시가 되는 것도 결코 좋은 현상은 아니지만 그 우등생들을 골라 제대로 교육시켜 좋은 법률가와 지성인으로 졸업시키고 있는 것인지 갈수록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오늘날 우리사회에서 법률가의 인상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으며 그런 「악질 법률가」를 키운 곳이 법대라는 논리앞에 부끄러움을 감출 수 없다.
○법률기술자로 전락
한국에서 변호사란 1세기도 안되는 역사를 갖고 있는데 벌써 「허가난 도둑놈」이라 불리고 사건브로커들과 결탁해 추악한 짓거리를 한다는 보도가 신문에 오르내린다. 변호사회에서는 악덕변호사들을 징계하기로 결의했다더니,팔이 안으로 굽는 듯 그 결과는 슬슬 꼬리를 감추는 것 같다. 검사도 요즈음 폭력배와의 유착운운하는 의혹말고도 직권남용과 직무유기에 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고,가장 「악질적 법률가」의 인상으로 뿌리박히고 있다. 판사도 언제부터인가 정의의 대변자요,마지막 보루라기보다는 법률기술자요,권력의 주구라는 인상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면서도 이 나라의 우수한 젊은이들이 법대를 선호하는 것은 법학이 은연중 관료법학화 했고,출세의 등용문이라는 세속적 판단이 깊이 작용하는게 아닌가 싶다. 그렇다고 현실적으로 다른 대안이 없으니 막을 길도 없는 것 같아 보인다.
어쨌든 이러한 법률가들이 6천명에 가깝게 도도히 활동하고 있는 한국사회가 과연 법치국가의 본질에 얼마나 가까운 것일까. 한국에서 2년간 살며 법학을 강의하다 얼마전 떠난 독일법률가 한분이 『한국은 아직 법치국가에서 멀다』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갈때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그의 논지는 한국은 법률도 많고 법률가는 있어도 정말 법의 집행,법의 생활은 없는 이중국가(Doppel staat)같이 보이며,따라서 한국에서는 법을 알기보다 힘있는 자를 아느냐 여부로 문제가 해결되는 것 같다는 분석이었다. 선거법에 아랑곳없이 온갖 탈법과 비행이 성행하는 것을 보고있는 터라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
한국에 법치주의가 안되는 이유를 한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따지고 보면 법을 만들고 운용하는 사람들이 더 법을 안지키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법경시,법냉소주의가 더 커지는 것 같다.
○사고 팔리는 변호사
이것은 한국법제연구원에서 행한 국민 법의식조사에서도 나타났다. 법문화를 발전시키는 견인차역할을 해야할 법률가들 자신이 문제의 집단과 계급으로 변질되고 있으니 슬픈 현상이다. 이러한 문제는 법조계의 내막을 아는 사람이면 이미 고질화된 현상으로 진단하고 있다. 법원에서는 재작년부터 사법제도개혁을 심의한다하더니 어느새 흐지부지되는 것 같고,법학계는 개선책으로 법대의 5년제·6년제 안을 30년이 넘도록 관철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근자에는 사법시험 합격자 3백명선을 두고 너무 많다는 기성변호사들의 반대가 있어 엉뚱한 싸움으로 번지고 있다. 도대체 이나라 법률가들은 법률가의 정신이 무엇인지 알고나 있는지,아니면 자신들의 눈앞 이익과 알량한 권위의식으로 소라껍데기 속으로만 파고드느라고 세상이 어떻게 바뀌는지도 모르는 것 같다.
세계는 바야흐로 포스트모던시대에 법의 지배와 법률가의 존재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을 하고 있으며 우루과이 라운드를 비롯,서비스직으로서의 법률직에 대한 대규모의 개방적 논의를 전개하고 있다.
한국에 법치주의를 통한 민주주의를 실현하려면 법률가 자신부터 정신과 생활이 민주화되고 선진화되어야 한다. 이것은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다. 변호사들이 아무리 인권운운하더라도 고액의 수임료외에 「성공사례금」이라 해 더 큰 돈을 받아내는데 신경을 쓰는 한 「사고 팔리는 변호사」「허가낸 도둑놈」의 악명을 벗을 수 없다. 독일에서는 성공사례금이란 부도덕한 것으로 일체 허용되지 않는다. 정의와 인권을 표방하는 법률가가 성공여부로 돈을 받고 사건을 부추기는 일에 골몰한다면 장사꾼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렇게 볼때 우리사회도 법조인과 사법제도 전반에 관한 재진단이 절실하다고 느껴진다. 사법제도 개선논의에서 제기된 법조일원화는 반드시 실천에 옮겨져야 한다. 한국법학원·법제연구원·형사정책연구원·사법연수원·법무연수원·각 대학의 법학연구소등 법률관계기관들도 적지않은데 왜 합의와 결행이 못나오는지 안타깝다.
새해들어 다행히 한국법학원에서 남북관계법률,법조양성제도를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프로그램을 시작한다니 기대가 크다.
○자기 경신의지 필요
법학원은 법학계와 판·검사,변호사등 6천여명의 회원을 가진 집결체로 뜻만 모으면 할 수 있는 기관이다. 모쪼록 민족과 국가를 위해 법률가 스스로 자기경신의 의지를 모아 국민들에게 정의롭고 합리적인 모범을 보여주기 바란다.
지난 2월7일 사법연수원 수료식에서 김덕주 대법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법률이라는 고정된 틀속에 복잡다기한 사실관계를 끼워맞추는 기능인이 아닌 거시적 안목으로 사회현상을 파악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갖춘 법률가가 필요하다.』
법은 궁극적으로 문화개념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 접근,발전시켜야 한다. 언론의 사명도 큰데 법에 관해 사회부 기자가 사건위주로만 다루지말고,문화부에서 연구하고 보도해 국민에게 계몽시키는 일도 필요하다. 어쨌든 우리 법률가들이 솔선수범해 이땅에 법치주의를 뿌리내리게 해야 민주주의가 정착될 것이다.<서울대교수·법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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