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상업용TV 세계 1위 넘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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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TV는 가정에만 팔아야 하는 걸까? 그 외엔 TV를 팔 데가 없을까?’ 중견 LCD TV 제조업체인 디보스(DIBOSS)의 심봉천(47) 사장은 2002년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다. 2002년은 심 사장이 디보스(구 세비텍)를 세운 지 2년째 되는 해였다. 디보스는 2001년 가정용 LCD TV를 개발했고, 그해부터 이 TV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는 곧바로 더 넓고 견고한 시장을 찾아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이다.

▶심봉천 사장이 디보스의 LCD 제품을 보여주고 있다.

2003년 LCD TV 수출로 동탑산업훈장 및 1000만 달러 수출탑을 수상하기까지 했다. 2002년 94억원이던 매출액은 2003년 455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2005년에는 매출이 732억원까지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심 사장은 5년 뒤를 생각했다. ‘가전제품’으로는 대기업을 당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003년 처음으로 상업용 TV 분야에서 39억원의 매출을 만들어 냈다.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별게 아니었지만 상업용 시장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됐다. 상업용이란 가정에서 사용하는 TV 외에 호텔·병원·공공장소 등에서 특정한 시스템에 의해 작동되는 TV를 말한다.

심 사장은 디보스를 설립하기 전에 LG전자 연구원으로 12년간 근무했다. 대기업에서 익힌 노하우를 가지고 독립했지만 그는 대기업의 무서움도 알고 있었다.

“시장이 막 형성될 무렵에는 기술을 가진 중소기업들이 발빠르게 제품화해 성공할 수 있죠. 하지만 몇년 지나 대기업이 들어오면 버틸 수가 없습니다. 대기업들은 좀 기다렸다가 판이 제대로 벌어지면 뛰어들기 때문이죠.”

생존 위해 ‘무모한 도전’결정

대기업들은 막강한 자금력과 브랜드 파워로 공세를 시작했다. 가격도 잇따라 인하하면서 중견기업들은 밑지다시피하는 가격으로 제품을 팔았다. 그렇게 팔아도 대기업의 브랜드 앞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해외에 공급하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제품은 잇따라 중국과 대만 업체에 밀리기 시작했다. 심 사장이 우려하던 대로 가정용 TV 시장의 경쟁이 격화됐고, 매출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디보스가 이런 와중에서 버틴 것은 상업용 TV 덕분이다. 가정용 TV 시장이 급성장할 때도 심 사장은 꾸준히 상업용 TV 매출을 늘려 왔다. 2005년에는 전체 매출의 29%까지 끌어올렸다. 변신의 효과는 지난해 나타났다. 상업용 TV 매출액이 300억원에 육박해 전년 대비 3배나 성장했다. 730억원에 이르던 매출액이 1년 만에 430억원대로 줄어들어 빛이 바랬지만 디보스는 지난해부터 사업구조가 극적으로 변했다.

올해는 매출의 92%가 상업용에서 나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극적인 사업구조의 변화 때문에 디보스는 올해 91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심 사장의 결단이 무모한 도박이라고 혀를 차던 업계에서 이젠 부러운 눈길을 보낼 정도다.

하지만 사업구조 변화가 쉬운 일은 아니었다. 특히 2003년부터 꾸준히 상업용 TV 시장 진출을 추진했지만 지난해 갑자기 나빠진 가정용 TV 매출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 “신문에 ‘중견 TV 업체 줄도산’이란 제목으로 기사가 한 번 나가면 은행 지점장이 전화를 걸어 옵니다.

향후 계획을 얘기하며 한참 설명하고 나면 주주들의 전화가 또 오죠. 직원들도 웅성웅성거리고…. 저는 상업용 TV 시장을 보고 확신했지만 워낙 매출이 안 좋았고, 또 상업용 TV 시장은 저희가 개척하는 입장이라 부담이 컸죠.”

지금까지 상업용 TV는 가정용 TV를 사다가 시스템을 약간 손봐서 사용하는 것이 고작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다 할 마케팅 방법론도, 검증된 시장도 없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의 목표는 확실했다. 심 사장은 “어차피 중소기업은 가정용에선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에 선택은 오로지 한 길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심 사장은 시장조사 결과 미국·유럽에는 상업용 시장이 따로 있고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상업용 TV는 쉽게 말하면 주문 제작형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은 자기들이 필요한 기능이 없으면 아예 설치 안 하죠. 일반 TV를 가게에 걸어놓는 것과는 다른 개념이죠.” 지난해 3월부터는 회사의 슬로건도 ‘세계 1위 상업용 디스플레이어(World No.1 Commercial Dis player)’로 정했다. 좋게 말하면 ‘블루오션’이고 다른 말로 하면 ‘무모한 도전’인 셈이다.

심 사장은 “3월 말까지 확정된 수주액만 550억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 6월부터 마케팅을 시작한 DID(Digital Information Displayer)가 시장에서 서서히 주문이 들어오고 있어 올해 매출액은 1000억원이 넘을 것이란 전망이지만 큰 욕심은 내지 않기로 했다.

세계 곳곳서 주문 밀물

DID는 디보스에서 관련 특허를 가지고 있는 광고 전용 디스플레이어다. 가로 위주인 디스플레이어와 달리 세로로 디자인돼 있고 컴퓨터가 내장돼 있어 인터넷에 연결만 하면 세계 어디서나 관리가 가능하다.

뉴욕에 설치된 DID도 인터넷 연결만 되면 서울에서 내용이나 밝기, 콘텐트 교체는 물론 전원까지 껐다 켤 수 있다. 스웨덴의 볼보 매장, 국민은행과 SC제일은행의 일부 매장, 김포공항, 롯데리아 일부 매장에는 벌써 디보스의 DID가 설치돼 있다.

또 다른 시장은 호텔이다. 유료(pay) TV 시스템이 필요하고, 객실과 호텔 프런트 간에 쌍방향 통신이나 실시간 결제 현황 파악을 위해 상업용 TV가 필요하다. 심 사장은 “디보스는 이런 호텔의 요구에 맞는 시스템을 제공하는 데 어느 업체보다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은행 한 지점에 디보스의 DID가 설치돼 있다.

이미 개발한 HD급 IPTV 기술을 적용할 경우 호텔에서 제공하는 영화와 성인물 등 유료 TV 콘텐트를 무제한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이미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미라주 호텔 등에 디보스의 상업용 TV가 설치돼 있다. 디보스는 또 미국 최대 호텔 IPTV 시스템 공급자와 계약 체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병원도 주요 시장이다. 현재 디보스는 미국 병원용 LCD TV 1위 공급업체인 PDI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미국 병원은 침상마다 개인 TV가 설치돼 있는 경우가 많고 간호사 호출, 진료 차트 확인, 자신의 증상을 입력하는 기능 등 쌍방향 통신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옆 사람에게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TV 소리는 베개 뒤 벽에서 나오도록 설치하는 경우도 있다. 병원마다 쓰는 프로그램이나 설치 방법, 시스템 구성이 다르기 때문에 주문 제작이 필요하다.

이처럼 상업용 TV의 고객은 작게는 수십 대, 많게는 수백 대씩 주문하면서 각기 다른 사양을 요구한다. 대기업이 쉽게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디보스는 2002년 TV 생산 이후 꾸준히 상업용 TV를 생산 판매해 이미 클라이언트로부터 상당한 신뢰를 구축하고 있다. 사업 초기부터 작은 물량이라도 ‘맞춤 서비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심 사장은 “상업용 시장은 우리 같은 중견기업엔 천혜의 보고”라며 “더욱 기술을 개발해 2010년께는 세계 최고의 메이커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디보스는 러닝머신용 TV, 요트용 TV 등 다양한 상업용 시장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앞으로 더욱 다양한 상업용 TV를 개발해 말 그대로 다품종 소량생산 형태로 대기업과 차별화한다는 생각이다. 대기업에서 접근할 수 없는 고객을 개발하는 게 디보스의 전략이다.

이석호 기자 (luk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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