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입좌절 55만 청소년 돕는 전대연 YMCA총무(일요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인생은 쓴잔속에 담겨있다/「진학=성공」생각서 벗어날때/부모·사회 소외감 극복도와야
오는 26일 실시될 전문대 입시발표가 끝나면 올해의 입시열풍은 일단 막을 내린다. 이와 함께 수많은 수험생들의 희비*락도 일반의 관심권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다.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며 대학에 간 청소년들의 뒤에는 올해에만도 그 두배에 가까운 55만6천여명의 또다른 청소년들이 패배의 쓴잔을 마시고 실의와 소외감에 시달리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서 이젠 연례행사가 돼버린 「패배자의 대행진」을 그치게 할 수는 정말 없을까.
서울 YMCA는 대학입시에 실패했거나 진학하지 못하고 사회에 진출한 이들 청소년들을 격려하기 위한 책·녹음테이프제작 및 무료배부사업을 5년째 계속하고 있어 관심을 모은다.
서울 YMCA에서 지난 30여년간 청소년문제를 다뤄왔고 낙방생 격려사업을 주관해온 전대연 총무(60)를 만나 입시 실패생을 포함,우리 사회가 앓고있는 청소년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올해도 예외없이 많은 청소년들이 대학의 문턱을 넘지 못한채 좌절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또 일부 청소년들은 대학을 동경하면서 사회를 향해 내키지 않는 걸음을 하고 있습니다. 왜 이 땅의 젊은이들이 대학으로만 모이려 할까요.
▲사회적 요인도 있겠지만 부모들의 허영심 탓이 가장 커요. 다시 말해 우리의 의식 깊숙히 자리하고 있는 허장성세하는 삶의 자세때문이죠. 한국은 예부터 뿌리깊은 양반 중심의 사회여서 반상의 차별이 극심했습니다. 이 때문에 자기 능력 이상으로 과시하기를 즐겼던 양반들의 행태가 우리의 마음속에 줄곧 도사리고 있어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 사람들은 집을 지어도 겉모양을 중요시 하지만 서양사람들은 보온이나 편의성을 더욱 따지잖아요.
­그렇다 하더라도 유난히 한국의 부모들이 자식들의 대학진학에 집착하는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요.
▲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자신들의 「한풀이 수단」으로 삼기 때문입니다. 가정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자식을 잘아는 사람은 그 부모입니다.
자식의 재능과 소질을 잘 알면서도 그것이 자신들의 뜻과 다르면 무조건 반대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강요합니다. 그리하여 자신들이 이룩하지 못했던 것을 자식으로 하여금 마치 「대를 이어 원수갚는 식」으로 이루려하기 때문이지요.
­기성세대인 부모들의 획기적 의식전환이 이루어지지 않는한 우리의 한정된 대학시설·정원안에서 입시 실패생대열은 계속 이어지게 마련이라는 말씀이신데 그러면 낙방생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우선 제일 시급한 것은 이들 청소년들이 갖는 실망감·좌절감을 해소시키는 일입니다. 그들에게 이번의 실패가 결코 재기불능한 완전한 참패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시켜 재도전할 수 있는 용기를 줘야합니다. 세번 낙방한 처칠이나 과거시험에 떨어졌던 이승만 박사·이상재 선생처럼 그들도 훌륭하게 자랄 수 있도록 말입니다.
덧붙여 대학이란 긴 인생 여정에서 반드시 거쳐야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사람의 능력과 소질은 각각 다르다는 것도 함께 알게 해야지요.
그렇게 함으로써 절대다수의 청소년들이 대학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의 능력을 재평가해 스스로 제길을 찾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서울 YMCA가 5년째 해오고 있는 낙방생 격려 프로그램도 그 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제 길이란 어떤 것을 뜻하는 것인지요.
▲두가지가 있겠지요. 그 하나는 마음을 빨리 가다듬어 재도전의 길에 나서는 것이고,다른 하나는 자기능력이나 소질에 맞는 직종을 찾아 사회로 나가는 것이지요. 사실 낙방한 청소년들에게 가장 심각한 것은 학교·사회에 대한 귀속감 상실에서 오는 엄청난 심리적 불안입니다. 이것을 빨리 해소하지 못할때 이들은 엉뚱한 방향으로 치닫기 쉽습니다.
­한국의 현행교육제도·교육방식에서 이러한 사태의 원인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요.
▲학교·가정·사회 모든 것이 입시중심으로 돼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학교는 지식전수에만 치중해 입시에서 점수따기만을 가르치고 있어요. 그때문에 확고한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올바르게 사는 방법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교육 고유의 본분을 저버리고 있고 다양한 재능을 키울 수 있는 특기교육등도 시간낭비로 치부되어 개개인의 특성이 발현될 기회를 봉쇄하고 있습니다.
­입시위주의 우리 교육현실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대입과목 조정·본고사 완전 부활등과 같은 제도개선도 한방법이 될 수 있겠지만 사회적 여건이나 인식이 바뀌지 않는한 근본적인 개선책은 기대할 수 없다고 봅니다. 그러나 초·중·고교 교육의 폭을 넓히고 분위기를 쇄신하는 방안의 하나로 우리도 미국등 선진 외국처럼 학교밖에서의 사회봉사활동이나 특기 등을 대입사정에 많이 반영하는 것도 검토해봄직하다고 봅니다.
­가정에서의 바람직한 청소년지도는….
▲무엇보다 과잉보호가 되지않도록 해야 합니다. 어릴때부터 자립심을 키워주고 재능·소질을 빨리 발견해 북돋워주는 양육태도야말로 가장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려면 자녀와 대화를 많이 가져야 합니다. 가족은 가장 확실하고도 좋은 스승이며 친구이니까요.
­며칠전 미국 팝그룹 「뉴 키즈」의 내한공연때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운동선수·인기 연예인에 대한 청소년층의 맹목적 열광 현상은 왜 일어날까요.
▲감정의 표현과 통제능력을 제대로 길러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연령과 신체의 성장·발달에 따라 그에 맞는 사고·판단력,그리고 자제력을 갖춰 생활할 수 있도록 교육돼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제약도 받아보고 뺏겨도 보고 지시받기도 하며 성장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젊은이들은 자기가 좋은 것이면 무엇이든지 괜찮고,하고싶은 것은 무조건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전혀 남을 의식하지 않고 거침없이 행동합니다. 남의 것을 빼앗는데는 무감각하나 내것을 빼앗기는 상황은 상상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사회의 책임도 있겠지만 가정교육 부재가 제일 큰 원인입니다.
지난해 여름캠프에 참가했던 국민학교 4학년 남자 아이 한명이 식사때 닭다리를 뜯지못해 못먹다가 옆에서 뜯어주니 무척 많이 먹는 것을 봤어요.
이것이 우리나라 젊은 부모들의 가정교육 현실입니다. 귀하다고해서 그렇게 키워도 되는 것일까요.
­그 말은 곧 우리 청소년들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동 원인중 상당부분이 기성세대 잘못이라는 뜻인지요.
▲그렇습니다. 정치가나 저명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어른들 모두 「백마디의 말보다 한번의 실천」이 중요하다는 평범한 진리를 항상 잊지 말아야죠.
특히 지도급 인사라면 밤에 켜진 등불과 같아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게 마련이므로 그 영향력도 큽니다. 따라서 지도자들은 「나는 곧 움직이는 책」이라는 의식을 갖고 행동해야 합니다.<석인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