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9일 국민연금법 개정에 대한 입장 표명이 잇따랐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조속한 시일 내에 새로운 개정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민주당의 김효석 원내대표는 "4월 국회에서 연금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각 당이 모여 단일 합의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방향은 다르지만 2일 본회의의 국민연금법 처리 때 의원 다수가 반대 또는 기권을 했던 통합신당모임도 입장을 정리했다. 이종걸 정책위의장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국회에 국민연금 개혁특위를 구성해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고 말했다.
유 장관의 사의 표명이 국민연금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여론을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 장관의 승부수는 일단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셈법은 더 복잡하다. 정치권에선 유 장관의 열린우리당 복귀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그의 복귀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이 더욱 그렇다. 유 장관은 열린우리당 내 개혁-실용 노선 투쟁을 불러온 장본인이다. 그가 주축인 참여정치실천연대 조직은 올 초 신당 창당과 당 사수파 간 다툼에서 사수파의 선봉에 섰다. 이 때문에 통합신당을 추진 중인 열린우리당에서 유 장관의 복귀를 반기는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2월엔 유 장관의 동반 탈당 주장이 나왔을 정도다. 당 통합추진위 회의에선 "어떻게 하면 유 장관을 당에서 내보낼까" 하는 방안이 논의될 정도였다.
당직을 맡고 있는 재선 의원은 "유 장관이 당에 복귀하면 노선 투쟁이 또다시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유 장관과 함께하기 싫어하는 다수 세력이 당을 뛰쳐나가기 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장관의 복귀가 범여권 통합세력을 자극해 통합 움직임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란 얘기다. 특히 당내에선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 "반려는 아니다"=노 대통령은 유 장관의 사의 수용을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유 장관은 국민연금법 개정, 제약 분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후속 대책, 의료법 개정 등 중요 현안들이 어느 정도 매듭지어질 때까지 장관 업무에 전념할 필요가 있으며 사의 수용 여부는 그 이후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승용 홍보수석은 "유 장관의 사의를 수용할지 여부를 유보하겠다는 뜻이지 반려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이 사의 수용을 유보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먼저 국민연금법 개정과 관련한 각 당의 논의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유 장관의 사의를 선뜻 수용할 경우 문책성으로 비칠 수 있는 데다 국민연금법 개정 논의 대신 유 장관의 거취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으로 증폭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언제까지 판단을 유보하느냐다. 문 실장은 "얼마나 소요될지는 지금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며 "예를 들면 국회에 그런 법안들이 발의되는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유 장관은 이날 직원 월례조회에서 "저에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조회다. 고별사 같은데 대통령이 언제 사의를 수락하실지 알 수 없다"며 "(자신의 운명을) 서든 데스(연장전에서 어느 팀이든 먼저 득점만 하면 경기를 끝내는 방식)"라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유 장관의 사의 표명에 노 대통령이 좌고우면하고 있다"며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보드랍고 윤기가 있다)더니 딱 그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박승희.김정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