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대통령은 유시민 복지 사의 수용 유보했지만 …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유시민(사진)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의 표명이 정치권 각 정파를 분주하게 만들고 있다. 정책적으로 그렇고, 정치적으로도 그렇다.

우선 9일 국민연금법 개정에 대한 입장 표명이 잇따랐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은 조속한 시일 내에 새로운 개정안을 발표하기로 했다. 민주당의 김효석 원내대표는 "4월 국회에서 연금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각 당이 모여 단일 합의안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방향은 다르지만 2일 본회의의 국민연금법 처리 때 의원 다수가 반대 또는 기권을 했던 통합신당모임도 입장을 정리했다. 이종걸 정책위의장은 "근본적인 해결책을 만들기 위해 국회에 국민연금 개혁특위를 구성해 시간을 갖고 논의하자"고 말했다.

유 장관의 사의 표명이 국민연금법 개정이 시급하다는 여론을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유 장관의 승부수는 일단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정치적 셈법은 더 복잡하다. 정치권에선 유 장관의 열린우리당 복귀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그의 복귀는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특히 열린우리당을 중심으로 한 범여권이 더욱 그렇다. 유 장관은 열린우리당 내 개혁-실용 노선 투쟁을 불러온 장본인이다. 그가 주축인 참여정치실천연대 조직은 올 초 신당 창당과 당 사수파 간 다툼에서 사수파의 선봉에 섰다. 이 때문에 통합신당을 추진 중인 열린우리당에서 유 장관의 복귀를 반기는 목소리를 찾아보기 어렵다.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2월엔 유 장관의 동반 탈당 주장이 나왔을 정도다. 당 통합추진위 회의에선 "어떻게 하면 유 장관을 당에서 내보낼까" 하는 방안이 논의될 정도였다.

당직을 맡고 있는 재선 의원은 "유 장관이 당에 복귀하면 노선 투쟁이 또다시 본격화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면 유 장관과 함께하기 싫어하는 다수 세력이 당을 뛰쳐나가기 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유 장관의 복귀가 범여권 통합세력을 자극해 통합 움직임이 훨씬 수월해질 것이란 얘기다. 특히 당내에선 정동영.김근태 전 의장의 움직임을 주목하고 있다.

?청와대 "반려는 아니다"=노 대통령은 유 장관의 사의 수용을 일단 유보하기로 했다.

문재인 청와대 비서실장은 9일 기자간담회에서 "유 장관은 국민연금법 개정, 제약 분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후속 대책, 의료법 개정 등 중요 현안들이 어느 정도 매듭지어질 때까지 장관 업무에 전념할 필요가 있으며 사의 수용 여부는 그 이후 판단하는 것이 좋겠다는 게 대통령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윤승용 홍보수석은 "유 장관의 사의를 수용할지 여부를 유보하겠다는 뜻이지 반려라고 볼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청와대 관계자들은 노 대통령이 사의 수용을 유보한 이유를 두 가지로 설명했다. 먼저 국민연금법 개정과 관련한 각 당의 논의 결과를 지켜보기로 했다는 것이다.

또 유 장관의 사의를 선뜻 수용할 경우 문책성으로 비칠 수 있는 데다 국민연금법 개정 논의 대신 유 장관의 거취를 둘러싼 정치적 논란으로 증폭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문제는 노 대통령이 언제까지 판단을 유보하느냐다. 문 실장은 "얼마나 소요될지는 지금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다"며 "예를 들면 국회에 그런 법안들이 발의되는 정도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유 장관은 이날 직원 월례조회에서 "저에겐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조회다. 고별사 같은데 대통령이 언제 사의를 수락하실지 알 수 없다"며 "(자신의 운명을) 서든 데스(연장전에서 어느 팀이든 먼저 득점만 하면 경기를 끝내는 방식)"라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나경원 대변인은 "유 장관의 사의 표명에 노 대통령이 좌고우면하고 있다"며 "고슴도치도 제 새끼는 함함하다(보드랍고 윤기가 있다)더니 딱 그 모양새"라고 비판했다.

박승희.김정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