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에세이] 무기력한 일본 야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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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8일 일본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당선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74)를 보면 '그처럼 운 좋은 정치인이 있을까'란 생각이 절로 든다. 인구 1200만 명의 일본 수도 우두머리 자리를 3기에 걸쳐 연임한 이는 역대 세 명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실력이 있으면 운도 따라주는 것이겠지'라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가 그동안 보여온 말과 행동을 보면 영 개운치 않다.

그는 최근 도쿄도 경비로 넷째 아들(40)을 해외에 출장 보내온 사실이 발각됐다. 한국 같으면 발칵 뒤집혔을 일이다. 그래놓고도 "내 아들은 실력이 대단하다"며 되받아쳤다. 또 도쿄지법은 이시하라 지사가 지출한 경비 일부가 "지사 활동에 필요한 게 아니었다"며 반환을 명령했다. 선거 과정에서 그의 출근 일수가 주당 평균 사흘가량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이시하라 지사 스스로 선거 초반 "보디블로(각종 스캔들로 인한 이미지 손상)가 꽤 타격이 있다"고 시인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51%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됐다. 어찌 된 일일까.

역설적으로 들리겠지만 이시하라 당선의 '1등 공신'은 아마도 제1야당인 민주당이 아닐까 싶다. 민주당은 이번 선거과정 내내 무력했다. 끝까지 자체 후보를 내지 못하고 막판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아사노 시로(淺野史郞.59) 전 미야기(宮城)현 지사를 형식적으로 '추천'했을 뿐이다. 이시하라 지사가 자민당의 공천이 아닌 추천이긴 했지만 그건 부동층 표를 잡기 위한 전략적 접근이었을 뿐이지 후보를 찾지 못해 추천에 그친 민주당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간 나오토(菅直人) 대표대행이나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간사장 등 쟁쟁한 민주당 인사들은 후보 선정 과정에서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난 안 나간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괜히 맞붙었다 지면 좋을 게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도지사 선거에 나서려면 의원 직을 내던져야 하는데 그럴 용기가 없었던 것이다. 반면 대중적 인기가 높은 당외 인사들로부터는 "민주당 간판으로 나갈 생각이 없다"며 연거푸 퇴짜를 맞았다. 보수 우익으로 기우는 집권 자민당을 제대로 견제하기는커녕 '여당인지 야당인지 모를' 아리송한 언행만 일삼는 민주당의 한계 때문이다. 이시하라가 악재에 몰린 호기를 스스로 차버리고 만 일본의 민주당을 보면 "이처럼 힘없는 야당이 또 있을까"란 생각이 절로 든다. 과단성과 자기희생 정신이 부족하면 주어진 기회도 얻지 못하는 법이다.

김현기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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