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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미래] 바다 속 '불타는 얼음' 에너지 걱정 녹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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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손바닥 위에 놓인 얼음덩어리에 불을 붙이면 거침없이 불꽃이 솟아오른다. 그러나 손은 뜨겁지 않고 얼음 녹은 물만 흘러 내린다. 이 얼음 불꽃(氷花)은 판타지나 무협소설에나 존재할 법하지만 '가스 하이드레이트'또는 '메탄 하이드레이트'라는 이름으로 지구상에 실존하는 물질이다.

가스 하이드레이트는 1990년대 후반에 들어오면서 차세대 에너지원으로 전 세계적으로 주목을 끌게 됐다. 해저에 묻혀있는 가스 하이드레이트를 합치면 석탄과 석유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전체 화석 에너지 양보다 훨씬 많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하지만 개발 기술이 부족하고, 개발에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것이 걸림돌이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생명화학공학과 이흔 교수팀의 최근 연구는 그래서 관심을 끈다. 이흔 교수팀은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골칫덩어리인 이산화탄소가 메탄과 분자구조가 비슷한 데에 착안했다. 단위 구조당 2개의 작은 구멍과 6개의 큰 구멍으로 이뤄져 있는 메탄 하이드레이트 옆에 이산화탄소를 갖다대 보았다. 그리고 핵자기공명 장치(NMR)를 이용해 수 나노미터 크기의 메탄 하이드레이트 분자를 확대해 살펴봤다.

◆이산화탄소를 이용한 메탄 채굴 방법 이미지 크게 보기

그랬더니 격자형 얼음으로 둘러싸인 메탄이 빠져나가며 그 자리에 이산화탄소가 대신 들어차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게다가 이산화탄소가 빠져나가는 시간도 수십분~수시간대로 상업적으로 응용할 만한 의미가 있었다.

"2013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 거래제가 전세계에서 본격적으로 실시되면 온실가스 효과의 주범인 이산화탄소를 어떻게 줄여야 하는지를 모두들 고민하게 될 것입니다. 기존에는 메탄을 자원으로 활용하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고 고민해왔는데, 이산화탄소와 메탄을 맞바꾸는 이 방법이 실용화되면 자원 채취와 환경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게 될 겁니다."(이흔 교수)

연구팀에 참여한 KAIST 이정원 연구원(박사과정)은 "기존에는 메탄보다 이산화탄소 하이드레이트 구조가 더 안정적이기 때문에 메탄 옆에 갖다대면 메탄이 모조리 빠져나올 것으로 예상했었지만 실제로 실험을 해보니 그렇지 않았다"며 "파이프로 메탄 하이드레이트 옆에 이산화탄소 1백 정도를 갖다 댈 경우 메탄 64 정도가 회수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교수팀의 연구는 과학저널 '사이언스' 최근호 '에디터스 초이스'난에 선정돼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지난 9월에는 한국 연구팀이 러시아 오호츠크해에서 국내 최초로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대량으로 매장돼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기도 했다. 한국의 해양연구원과 러.일.독 공동 연구팀이 오호츠크해의 사할린 사면과 데러긴 분지 등 2곳에 탐사선을 타고 들어가 4m 깊이의 해양 퇴적물을 시추한 결과,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대량으로 묻혀 있었다.

해양연구원 진형근 박사는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보통 수십m 이상 깊이에서 나오는데 얕은 바다에서도 나오는 것으로 봐 매장량이 엄청난 것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오호츠크해는 러시아가 올해 처음으로 외부 연구팀에 개방한 곳이다.

일본은 앞으로 10년 내에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자원화하겠다는 구상 아래 지질조사소 등 국립연구소.일본석유공단과 대학.민간 산업체 등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통산성 차원에서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이에 자극받은 미국 또한 의회에서 2000년 지원법안을 통과시키고, 2015년 안에 알래스카의 메탄 하이드레이트를 시추해 이용하겠다는 계획이다.

메탄 하이드레이트는 국제 공동연구가 필수다. 연소 과정에서는 물과 이산화탄소만 나오고, 나오는 이산화탄소 양도 석탄의 절반 수준이다. 하지만 고체 상태의 메탄 하이드레이트가 시추과정에서 연소되지 않고 그냥 녹으며 나오면 이산화탄소보다 10배 강한 온실효과를 낸다. 시추과정에서 환경적인 위험이 큰 것이다. 이흔 교수는 "수소에너지처럼 국제적인 컨소시엄을 만들어 공동 연구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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