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회 KT배 왕위전' 멋진 공방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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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예선 하이라이트>

○ . 이영구 6단 ● . 윤찬희 초단

끈끈함. 또는 견고함. 세상살이에서도 이런 유의 힘은 의외의 위력을 발휘하곤 한다. 섬광 같은 번득임이나 사람을 놀라게 하는 기발함은 없지만 일정한 보폭과 확실한 안목으로 꾸준히 목표를 향해 다가가는 상대는 무서운 존재인 것이다. 이영구 6단의 바둑이 그렇다. 힘도 좋고 싸움도 잘하지만 그는 본질적으로 끈끈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윤찬희라는 이 소년 기사도 그 점에서 만만치 않다.

장면1(73~82)=백△와 흑▲의 교환은 누가 봐도 백의 실수라고 느낄 것이다. 반쯤 맛이 간 백△가 지금 이영구 6단의 고전을 말해준다.

지금의 전장은 우변이다. 실패를 느낀 이영구는 집에 관한 한 최대한 '짜게' 움직이고 있고 그 반작용으로 흑의 윤찬희는 공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73의 절단도 갈등 끝에 내린 결단. (일이 잘못될 경우 공배로의 전락을 각오해야 한다) 흑A 한 방으로 대마가 빈사상태에 빠지므로 74의 수비는 절대. 그 다음 75로 뛰어 흑은 백의 양곤마를 겨냥하고 나섰다. 이영구는 76~80까지 긴급히 안형을 확보한 뒤 82로 도주.

장면2(83~94)=윤찬희가 우변 백을 노려본다. '참고도'처럼 머리를 두드리고 싶지만 이건 기분 뿐, 백2로 떵떵거리고 살아버린다. 그래서 고심 끝에 83의 급소를 찾아냈고 87까지 백 두 점마저 잡으며 근거를 도려냈다. 그러나 88로 막았을 때 89가 오버 페이스. 90의 급소 일격으로 순식간에 넉 점이 떨어지고 말았다. 쌍방 은근하면서도 멋진 공방전이었으나 이영구 6단의 노련한 타개가 돋보인 장면이었다. 흑의 공격은 실패로 돌아갔고 비세의 백은 여기서 바짝 따라붙게 됐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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