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관리제」문제 많다/기업 부도 유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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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회생가능성 없이 마구잡이 신청/투자자만 희생… 증시 교란요인도
기업환경이 악화되면서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기업이 부쩍 늘고있다. 한동안 뜸했던 법정관리 신청기업은 90년부터 늘기시작해 그해 신청기업수가 15개나 됐으며 작년에는 서울지역에서만 18개사,전국적으론 약30개에 달한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에 더욱 문제되는 것은 일부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악용하려 든다든가,상장사들이 투자자 몰래 법정관리를 신청,이들에게 재산상 손실을 안기며 회복세의 주가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점이다. 상장사중에는 90년 9월 모피수출 업체인 대도상사 이후 최근 삼양광학까지 무려 12개사가,비상장사중에는 「수서사건」의 주역인 한보주택을 비롯해 고려원양 등이 법정관리 신청을 냈다.
법정관리 기업이 줄을 이으면서 이 제도가 당초 취지와는 달리 남용되거나 변형되고 있다는 지적도 여기저기서 일고있다.
법정관리란 한마디로 법관의 판단에 의해 최장 20년까지 기업부도를 유보시키는 조치다. 기업이 도산할 경우 하청기업을 포함해 관련업계 및 국민경제가 큰 타격을 입는 등의 여러가지 문제를 막자는 것이 기본정신이다.
그러나 최근 잇따르는 법정관리 신청기업중 이같은 경우에 해당되는 기업이 과연 몇개나 되는지 의아스럽다는 것이 금융계의 지적이다. 자본금 규모가 고작 50억원 안팎인 중소기업이 대부분이고 커봤자 2백억원 선이다. 부도가 나더라도 충격이 크지않을 기업들이 이 제도에 기대는 사례가 잦다는 것이다.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않타 하더라도 법정관리의 첫째 판단기준은 기업의 회생가능성에 맞춰져야 한다. 법정관리는 무엇보다 채권자의 희생을 전제로 하는만큼 법정관리에 들어가서도 회생전망이 불투명 하다면 결과적으로 법원의 판단이 그릇됐다는 비난을 면키어려운 것이다.
과거의 사례를 보면 법원이 과연 법취지에 걸맞은 결정을 내렸는지 얼른 판단이 서지 않는다는 비판도 없지않다.
회사정리법이 제정된 지난 62년 이후 90년말까지 법정관리 결정을 받은 업체는 1백43개에 이르는데 그중 회생에 성공한 기업은 현 화승그룹의 모체인 동양고무를 비롯해 동양시멘트·신호제지·형광등메이커인 신광기업등 10개에 불과하다. 4개사는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중도에 가망성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 파산했고 나머지 1백29개사는 장기간 채무가 동결됐음에도 불구하고 근근이 회사를 꾸려가는(법정관리 진행중)정도다.
금융계에서는 법정관리 기업들이 이같이 고전하는 것에 대해 법원이 회생가능성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한 탓이 크다고 지적한다. 현재 법정관리는 회사나 회사대표가 관할법원에 신청을 내면 법원은 회생가능성을 타진하는 조사위원을 선임하는데 조사위원은 대부분 변호사가 되고 변호사는 회계사 등의 도움을 받아 「의견서」를 제출하고 법원은 이것을 토대로 법정관리를 받아들일 것인지,기각시킬 것인지 최종결정 하게 된다.
문제는 이 과정에 신용평가 회사나 관련업계 전문가들의 객관적이고도 정확한 전망을 수렴하는 절차가 거의 없어 회생가능성을 잘못짚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관계전문가들은 『도산을 연장시키는 정도의 법정관리는 이 제도의 취지를 못살릴뿐 아니라 우리경제의 필수과제인 산업구조 조정을 더디게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법정관리제도를 지금보다 훨씬 엄격하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심상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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