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기업들 무한경쟁 판도라 상자가 열렸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다. 이제 상자 속에서 아시아 기업들의 무한 경쟁이 뛰쳐나올 것이다."

일본의 대표적 통상전문가인 하타케야마 노보루(山襄) 국제경제교류재단 회장은 한.미 FTA 체결을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에 비유했다. 한.미 FTA에 자극받은 일본과 아시아 국가들이 적극적인 FTA 전략으로 선회하게 되고, 그에 따라 아시아 기업들 사이에 무한경쟁이 펼쳐질 것이라는 얘기다. 그는 "처음엔 협상 타결 가능성을 낮게 보기도 했다"며 "한국 협상단은 놀라운 결단력과 협상력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인터뷰는 4일 도쿄의 그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한.미 FTA 타결을 어떻게 평가하나.

"획기적인 일이다. 한국의 대미 수출이 늘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경제 체질도 강하게 해줄 것이다. 일본 속담에 '힘든 일이 당신을 보배로 만든다'는 말이 있는데 사람뿐 아니라 경제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한국을 FTA 파트너로 삼은 배경을 어떻게 생각하나.

"동아시아에서 자유무역을 확대하는 거점으로 한국을 선택한 것이다. 미국은 싱가포르와 먼저 FTA를 맺었지만 그건 규모가 작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전체의 FTA를 얘기하고 있지만 먼 훗날의 얘기다. 당장은 양자 간 FTA를 맺을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일본과는 얘기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일본 기업들은 한.미 FTA를 경계하고 있는 것 같은데.

"한국 제품은 반도체 칩이나 가전제품, 특히 액정 TV와 같이 지금도 경쟁력이 있는데, 관세까지 면제받게 됐으니 경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헤겔이 말했듯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는 법이다. 일본 기업도 경쟁력 강화를 서두르게 된다. 예컨대 한국보다 생산원가를 5% 줄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할 것이다. 일본 기업에는 제2의 방책도 있다."

-일본의 FTA 전략에는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한국은 앞으로 유럽연합(EU)과도 FTA를 맺을 것이다. 따라서 일본도 적극적인 FTA 전략으로 나가 미국과 FTA를 맺을 것이다. 개방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일본이 지금 결단을 못 내리는 이유는.

"최대 걸림돌은 농업 보호 정책 때문이다. 근본 원인은 일본에는 위기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일본은 경제가 잘 풀리고 있어 한국처럼 FTA로 어려움을 타개하려는 위기 의식이 지금 별로 없다."

-중국과의 FTA는 어떻게 될까.

"그것도 한국이 먼저 맺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중국 외교부는 일본과의 FTA에 열의가 있지만 중국 상무부가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 쉽지 않다."

-한.미 FTA가 아시아 전체에 어떤 영향을 줄까.

"지역 전체에서 진정한 무역 자유화를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 결과 아시아의 기업들은 지금까지 없었던 치열한 경쟁에 돌입하게 된다. 경쟁에서 반드시 한국 기업이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일본 기업도 FTA 체제에서 한층 체질이 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협상 결과를 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 문제점은 없나.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11조 2항의 식량 수출금지 가능 규정에 대한 언급이 없는 점은 잘 이해가 안 된다. 가령 한국에선 FTA 발효 이후 축산농가가 계속 줄어들 텐데 만약 미국에서 쇠고기 부족 사태가 일어나면 수출을 제한할 수도 있다. 한국은 식량 안정을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FTA 조문에 GATT 11조 2항의 해당 규정을 무효화한다는 조문을 넣어야 한다고 본다."

-한.일 FTA 협상은 2년 이상 중단된 상태다. 어느 쪽 책임이 더 크다고 보나.

"한국은 공업 분야는 95%, 농업 분야는 90% 자유화하겠다고 한 데 비해 일본은 공업 98%, 농업 56% 안을 제시했었다. 한국은 일본의 농업 개방폭이 그 정도라면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고 거부했다. 책임을 따지자면 상식 밖의 숫자인 56% 안을 설정한 일본이 더 크다. 그러나 한국도 대화를 계속해 나가면서 해결하는 자세를 취하는 게 옳다."

도쿄=예영준 특파원, 사진=권철(프리랜서)

◆ 하타케야마 회장=1936년생. 도쿄대 법학부 졸업. 통상산업성에서 무역국장.기초산업국장.통상정책국장.심의관을 거쳤으며, 총리 비서관을 역임한 뒤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일본무역진흥기구(JETRO) 이사장을 지냈다. 한.일 FTA 협상 초기에 적극 관여했다. '통상교섭, 국익을 둘러싼 드라마'란 저서가 있다.

※인터뷰 전문은 9일 시판되는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에서 볼 수 있습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