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조차 일 고도에 갇힌 징용한인/일지 납골당 공개·참장 증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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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4∼15세 소년 끌어다 미쓰비시 광업소서 강제노동/굶주림·몰매 시달리던 122명 유골도 「지옥의 섬」에
제2차대전당시 일제에 강제연행돼 중노동에 시달리다 부제의 객이 된 한국인 1백22명의 영혼이 일본 나가사키(장기)해상 한 고도에도 묻혀있음이 밝혀졌다.
일본 주간 프라이데이지는 최신호(2월21일자)에서 나가사키 해상 18㎞지점의 하시마(서도)에서 강제노동중 사망한 한국인·중국인 등의 납골당을 공개하며 당시의 비참했던 상황을 증언을 통해 생생하게 보도했다.
하시마는 둘레 1.2㎞의 작은 섬으로 미쓰비시(삼릉)석탄광업소가 석탄채굴을 위해 높이 10m정도의 콘크리트방벽을 치고 한국인·중국인 노동자들에게 채굴작업을 강요했다.
이 섬 둘레에 콘크리트 장벽을 친 모습이 마치 군함같다하여 군함도로도 불렸다.
14세때 이 섬에 끌려가 온갖 고생을 다하고 극적으로 살아 남은 서정우씨(63)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농사를 하고 있다가 갑자기 연행돼 도착한 곳이 나가사키였다. 함께 연행된 사람 대부분이 14∼15세 정도였고 식사라고는 고작 멸치 으깬 것과 콩깻묵이 전부였다. 그것을 먹으면 매일 설사가 났다. 작업도중 잠시 쉬기라도 하면 몽둥이로 등을 내리치는등 가혹행위가 뒤따랐다. 고통을 못이겨 도망치는 사람은 일본인들이 배를 타고 뒤따라와 때려죽였다.』
군함도는 한번 들어오면 살아갈 수 없는 「지옥의 섬」이었다.
군함도의 실태에 대해선 그동안 밝혀지지 않았으나 7년전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회」회장인 오카 마사하루(강정태) 목사가 공식자료를 발견함으로써 베일이 벗겨졌다
자료에 따르면 1925∼45년 이 섬에서 사망한 사람은 모두 1천2백95명이며 이중 한국인이 1백22명,중국인이 15명이었다.
한국인 사망자중 58명이 병사했고 나머지는 사고사였다. 사고사의 내용을 보면 채굴작업중 압사외에 외상에 의한 사망이 15명 포함돼 있어 안전성을 무시한 갱내작업과 무시무시한 린치가 자행됐음을 말해준다.
군감도에서 사망한 한국인들의 유골은 전후 근처 다카시마(고도)의 천인총에 옮겨진후 지난 88년 이 섬 김송시에 안치됐다.
전북산업대 이복렬 교수를 비롯한 실태조사팀은 한국인 사망자중 45명의 신원을 파악,일본정부와 비쓰비시사측을 상대로 소송을 준비중이나 일본정부와 관계자들의 무책임한 행동이 큰 벽으로 다가오고 있다.<김국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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