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강우석 젊은 영화 찍는 "팔리는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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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강우석 감독(1959년생)의 작품 목록과 관객동원 수.
①『달콤한 신부들』(88년) 4만
②『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89년) 20만
③『나는 날마다 일어선다』(89년) 5만
④『누가용의 발톱을 보았는가』(90년) 6만
⑤『열아홉살 절망 끝에 부르는 하나의 사랑노래』(91년) 2만
⑥『스무살까지만 살고싶어요』(91년) 4만.
흥행으로만 봐선 좋은 성적은 아니지만 데뷔 3년만에 벌써 여섯 편을 내고 있다는 것은 그가 가장 잘 팔리는 청년감독 중 한명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현재 1편에 연출료 3천만원 이상을 받는다. 게다가 그는 오는 4월초에 크랭크인할 새 작품의 로케 헌팅차 20일간예정으로 13일 미국여행을 떠난다. 이 영화는 대학에 낙방한 학생이 미국유학가 여러 가지 행각을 벌이는 얘기를 코미디로 그려보자는 것. 그러나 주인공을 차라리 대학졸업생으로 하여 미국 유학가 영어를 한마디도 못하는 인물로 설정할까 고심중이다. 제작은 이번에 중국영화『황비홍』을 들여와 흥행에 크게 성공한 이화예술영화사.
신인 강우석이 돌연히 돋보이기 시작한 것은 관객 20만을 동원한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부터라고 할 수 있다.
20만이라면 만루 홈런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더라도 3점 홈런은 되기 않는가. 또 영화자체도 그때까지 한번도 조명되지 않았던 대학 입시 전쟁이라는 영구적 지옥에서 허덕이는 고교생들의 생태와 희·비극을 그려 상당한 충격을 준 착실한 내용의 것이었다. 이후 이 영화와 유사한 영화들이 쏟아져 나와 지난해 여름방학까지 여기저기 극장에 걸렸던 것만 봐도 그 위력이 어느 정도였던지 짐작할 수 있다.
이 영화는 당초 시나리오의 착상이 좋았다고 하겠는데 작가는 계원예고 교사였던 김성홍. 신문에도 보도되었던 여중생의 성적하락비관자살을 모델로 하여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성홍 작가는 후에 감독으로 돌아 『그래 가끔 하늘을 보자』『열일곱살의 쿠데타』등 비슷한 성향의 영화를 연출한다.
강우석이 영화계에 투신하게된 동기는 자못 재미있다. 그는 5∼6세 때부터 거의 광적인 영화팬인 어머니 배명년씨(62)를 따라 낮이나 밤이나 극장에 다녔다. 외화든 방화든 새 것만 걸리면 안 가고는 못 배기는 어머니에게 마침내 아버지도 항복(?), 그렇다면 막내인 우석을 반드시 동반한다는 조건으로 강우석 어머니의 영화 나들이는 집안에서 공식화되었다. 이렇게 어머니를 따라 영화란 영화는 거의 다 본 강우석이 중학교 다닐 때쯤엔 벌써 장래목표는 영화감독이라고 굳어져버릴 정도였다.
언젠가 타임지가 이탈리아감독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파리의 마지막 탱고·마지막 황제)특집기사를 냈을 때「그를 어쩔 수 없는 영화의 아들 (true child of cinema)」이라고 형용한 적이 있다.
대학교수·시인·영화평론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5∼6세때부터 늘 영화구경을 다녔기 때문이다· 5∼6세때부터 극장 나들이를 한 경로는 강우석도 비슷하다. 전국극장연합회 같은 데서는 강우석 감독 어머니 같은 분에겐 표창장 같은 것을 드리는 제도를 연구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강우석은 정진자·정인엽 등의 조감독으로 약 6년 지낸다. 그 동안 생계가 안되니까 외국영화의 대사 자막 번역을 했다. 『아마데우스』『헌터』, 그러고 많은 중국영화의 자막번역을 했다. 중국영화의 대사·대본도 영어로 들어온다. 젊은 감각을 지닌 조감독이라 대사 번역이 우리말 대사 같다하여 호평이었다. 1편에 50만원쯤 받았다. 감독으로 외화 대사 번역을 한 사람으론 이형표가 있다.·대사 번역은 상당한 공부가 된다.
강우석은 영화를 굉장히 빨리 찍는 감독중 한사람이다. 시나리오 정리작업을 할 때는 비교적 오래 물고 늘어지는 편이지만 크랭크인했다 하면 일사천리로 나간다.『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나 전문가들 사이에 호평이었던 코미디 『나는 날마다 일어선다』같은 것은 불과 1개월만에 완성했다. 다만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의 경우는 1년이 걸렸다. 『누가용의…』에서 신인여우상을 탄 미스코리아 출신 김성령는 염문이 있었던 것처럼 되어있지만 이쪽이 총각이기 때문에 그 정도의 소문은 영화 찍을 때마다 늘 난다. 그 역시 미래의 감독이다.【임영(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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