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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신 공희(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멕시코 유카탄반도의 유명한 마야문명유적지 치첸이차에 가면 세노테라는 큰 샘물이 있다.
마야인들은 왕국이 멸망하는 9세기까지 자기들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비는 제의를 거행할때마다 1년에 수십명내지 많게는 수백명의 사람을 이 샘물에 던져 신에게 제물로 바쳤다.
남미 3대문명의 하나인 잉카문명에는 더욱 소름끼치는 시토 크라이미라는 인신공의제의가 있다. 잉카제국의 6월 태양제의는 제물로 바치는 소녀의 가슴에 비수를 꽂아 선혈이 낭자하면 왕이 거울을 비춰 태양신으로부터 새불씨를 얻어내곤 했다.
잉카의 태양제의는 제국이 스페인의 정복으로 멸망한 1532년까지 계속됐다.
기원전 3세기부터 4백여년동안 계속된 멕시코 아즈텍문명에서는 「달의 신」(월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아즈텍인들이 숭배한 많은 신들 가운데서도 특별히 달의 신이 사람의 붉은 피를 즐겼다.
아즈텍의 인간희생제의는 신들이 당초 인간을 창조하고 해와 달을 만들때 자신들의 몸을 제물로 바쳤다는 신화에서부터 비롯됐다. 멕시코시티 북쪽 50㎞ 지점에 있는 고대도시 테오티와칸에는 아즈텍인들이 제의때 사람을 제물로 바치던 길이 4㎞,폭45m나 되는 「죽은자의 길」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태양신 숭배는 고대 농경민족에 보편화된 원시신앙. 고대인들은 태양신이 인간의 생명을 제물로 받아야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고 그 대가로 인간에게 풍요를 가져다준다고 믿었다.
마야인들의 조각중 사람의 가슴을 벤 자리에 생생한 식물이 자라고 있는 모습은 농경민족의 이러한 원시신앙을 잘 드러내 보여준다. 마야·잉카·아즈텍문명의 주인공인 인디오들은 형질인류학적으로 우리와 똑같은 몽골로이드계통의 황식인종이다.
원래 원시종교에 있어서의 인신공희는 속에서 성으로 옮겨가는 성화의 의례였다. 우리나라에도 신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설화와 민담이 적지않다.
그러나 불교·기독교 등과 같은 고등종교는 사람의 생명을 무상의 가치로 인정해 인신공희를 절대 금기시해오고 있다.
한 기독교 여신도가 며칠전 신에게 제물로 바친다며 어린 딸을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어처구니없는 저 우매한 「광신」을 보며 인류역사가 수천년 거꾸로 돌아간 착각을 느낀다.<이은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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