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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거부 환자사망통탄하는 김순 소비자문제연시민모임회장(일요인터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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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환자 내쫓는 의사 쫓아내야죠”/자격증 위한 의대교육 인간화처방 시급/무조건 종합병원 찾는 풍조도 고쳐져야
『환자는 심신이 가장 약한 상태에 처해있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사랑만 있었더라도 결코 이번과 같은 비극적 사건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지난 3일 새벽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50대 남자환자가 병원의 진료거부로 이 병원 저 병원을 돌다 끝내 숨진 사건을 놓고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 김순 회장은 「의사의 인간에 대한 기본적 사랑의 결핍」을 개탄한다.
툭하면 되풀이되는 의사들의 진료거부행위는 「나는 환자의 건강과 생명을 첫째로 생각하겠노라」는 「히포크라테스선서」에 명기된 기본적인 직업의식마저 결여된 것으로,일반인들에게는 위기의식까지 갖게 한다.
김회장을 만나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각종 의료분쟁과 의료인들의 비윤리적 행동 등,인술시혜라는 본래의 성스러운 모습에서 아득히 멀어져가고 있는 오늘날 한국 의료계 현실과 소비자들인 환자의 권리등에 관한 의견을 들었다.
시민의 모임은 85년 「환자의 권리선언」을 제정하는등 한국에서의 의료서비스에 대해 집중적인 연구를 해왔다.
­생명이 위급한 환자를 앞에 두고 「전문의가 없다」「예치금을 먼저 내라」는 등의 이유로 진료를 거부해 끝내 숨지게 했다는 보도에 국민들이 크게 분노하고 있습니다. 왜 이같은 비인간적 일들이 일어난다고 보시는지요.
▲인명을 중요시하는 의식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요즘 만연하고 있는 인명경시풍조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지요. 의사란 예부터 「인술을 베푸는 사람」 혹은 「생명을 다루는 사람」이라며 존경을 한몸에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의사 스스로가 환자를 내쫓았다는 것은 본분을 포기한 행위라고 밖에 볼수가 없어요.
­최근들어 병원이 종합병원으로 대형화·기업화하고 있는데 이런 현상은 이번 사태와 관계가 없을까요.
▲병원이 대형화하는 것이 반드시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겠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값비싼 의료기기들을 갖추고 우수한 의사들을 한곳에 모아 훌륭한 시설에서 환자들을 돌볼수 있으니까요. 또 다양한 형태의 임상결과들을 서로 손쉽게 비교·분석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지식이나 기술의 습득과 개발이 그만큼 빨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병원의 대형화·종합화는 바로 의술의 기업화를 의미합니다. 이렇게 되면 병원은 사업체로서의 개념이 강해지며 손익을 따지는 경영을 중시하게 됩니다. 이 상태에 이르면 환자와 의사 사이엔 더이상 따뜻한 정이 오가는 인간대 인간의 관계를 기대할 수가 없게 됩니다. 바로 이점이 이번과 같은 사태를 초래한 주요한 원인의 하나라고 봅니다.
­결국 요즘의 의료인들이 너무 메말라 인간미가 없다는 말씀같은데….
▲그래요.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모두 심신이 가장 허약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 사람들은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모든 것을 의사에게 맡기고 싶을 것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생명까지도 맡깁니다. 그런데 이런 환자의 믿음과 소망을 현실적 물욕이나 귀찮다는 것 때문에 문전박대했다면 어디에서 인간미를 찾을 수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오늘날 의사들의 인정이 이처럼 메마르게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교육의 잘못으로 봐요. 의과대학에서의 교육이 단순히 돈벌이하기에 좋은 수단중의 하나인 의사 자격증을 얻는데만 도움을 주는 것이어선 안되지요. 신학대학에서 목사나 신부같은 사제를 양성하듯이 의과대학은 신비스런 생명의 오묘함을 다루는 스승(사)를 길러내야합니다.
­현행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에 문제는 없을까요.
▲정부에서도 보다 나은 체계의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압니다. 의료보험의 운영체계를 바꿔 종합병원으로의 집중을 방지하고 더 좋은 의료혜택을 다수의 국민들이 함께 나눌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러나 병원의 비대화,장삿속으로만 치닫는 종합병원의 운영은 재검토되어야 할 것 같아요. 좋은 시설과 일류 의료진을 고루 갖춘 곳이고 보면 자연히 환자들이 몰리게 마련이고,그러다 보니 의사 한사람이 하루에 돌보아야 할 환자가 1백명을 웃돌지요. 이래서는 올바른 진료를 바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종합병원마다 한결같이 적자운영이라고 야단들이니,무엇이 잘못돼 있는지 알 수가 없어요.
­무조건 종합병원으로만 가려는 소비자들도 문제가 있지요.
▲그렇지요. 가벼운 증상일때는 주위 의원이나 병원에서 치료를 받음으로써 종합병원은 꼭 그곳의 고급 의료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사회적 약속을 지킨다면 수용시설이 모자라 큰 병원을 이용하지 못하는 중환자가 줄어들 것입니다.
­이번에 어느 병원에서는 가해자가 자동차보험가입이 안됐다고 예치금 5백만원을 요구하며 진료를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지난해에는 전국의 1천3백여 병·의원에서 의사 1명이 매일 믿기 어려우리만큼 많은 환자를 진료하고 그에 상응하는 보험료를 신청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의료보험연합회 자료를 근거로 시민의 모임에서 분석한 결과 의사 한사람이 하루평균 1백54.5명을 진료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숫자는 의사가 하루 10시간을 근무한다고 하면 3분52초만에 환자 1명을 보고 8시간 일한다면 3분6초만에 1명을 진료한다는 계산이 나오지요. 더욱 놀라운 것은 의사 1명이 매일 3백명을 넘게 진료하는 병·의원이 40곳이었고 최고 5백26명을 진료했다는 곳도 있었지요. 의사 한사람의 하루 적정 환자수는 45명이라고 합니다.
­그 통계가 암시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두갈래의 해석이 가능하겠지요. 우선 이 자료를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인다면 「소비자들이 결코 제대로된 진료를 받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이고,믿지 않는다면 「의사들이 보험료를 많이 타내기 위해 엉터리로 진료환자수를 늘렸다」는 주장도 가능하겠지요. 어떤 경우든 모두 문제지요.
­최근 빈발하는 의료사고분쟁의 신속하고 공정한 해결을 목적으로 보사부가 마련중인 의료분쟁조정법 시안을 어떻게 보시는지….
▲환자는 전문지식이 없기 때문에 의사와 다툼이 발생하면 불리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유일한 호소방법이 법원에 제소하는 것인데 이 시안은 자칫 운용을 잘못하면 하나밖에 없는 이 제소의 길마저 막을 우려가 없지 않아요.
그러나 의사측에서 보면 피해자들이 흔히 병원점령·폭력과 같은 비이성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을 억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의료사고 피해자보다 의료인들의 권익보호에 더 기운,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당국은 공청회를 여는등으로 공정한 의견수렴과정을 거쳐야할 것입니다.<석인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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