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살 은행 10억들여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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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서울시가 고사위기에 처한 8백년 묵은 은행나무 한 그루를 소생시키기 위해 10억원의 예산을 들여 뿌리 발육에 장애 요인이 되고있는 나무주변 연립주택 2동·교회건물 등을 매입해 철거하기로 결정, 화제가 되고 있다.
「북한산털보」로 알려진 차준엽씨(42·환경단체 자연의 친구」대표)등 환경보호운동가들이 지난 1년간 벌여온 끈질긴 구명(?)운동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화제의 나무는 북한산자락인 서울 방학동 549의1 신학빌라 옆에 있는 수령 8백년(추정)의 은행나무.
서울시 지정보호수 1호인 이 은행나무는 수나무로 키 24m에 허리둘레 10m의 위용을 자랑하는 서울 시내 최고령 생물중의 하나로 주민들은 마을 보호수로 여기며 신성시했다.
한여름이면 울창한 숲을 이뤄 마을주민들에게 시원한 그늘을 제공했던 북한산 은행나무가 수난을 겪기 시작한 것은 이 나무에서 7m남짓 떨어진 곳에 3층 규모의 연립주택 신학빌라 신축 공사가 시작된 88년 10원부터.
『나무의 뿌리는 나무높이(2m)만큼 뻗는 법입니다. 연립주택 공사과정에서 나무뿌리가 잘려 나가면서 잎이 퇴색하기 시작했어요.
게다가 2여m지점에 신동아건설이 짓는 50m 높이의 조합아파트 골조공사가 시작되면서 줄기까지 마르기 시작하더군요.』
윤인수씨(67)등 주민들은 『공사를 강행할 경우 마을수호수가 고사하게 된다며 연립주택 신축계획을 철회해 줄 것을 요구했으나 관할 도봉구청은 건축법상 하자가 없다는 이유로 건축허가를 내줬다』고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북한산털보」차준엽씨가 지난해 4월부터 공사중지 등을 요청하며 나무 살리기 운동을 펴기 시작했다.
차씨는 시공업체가 공사중지 요청을 외면하자 같은 달 l5일 은행나무 아래에 텐트를 치고 12일 동안 단식을 벌이기도 했다.
또 수원시향 그린피스 실내악단은 은행나무살리기운동을 펴는 환경단체들을 돕기 위한 성금모금연주회를 가졌으며 미국인 케네스 캘리어씨(46·미8군근무)부부 등 주한외국인도 이 운동에 합세했다.
서울시가 올 예산에서 북한산은행나무 보호 관리비로10억원을 편성한 것은 이 같은 환경보호단체들의 끈질긴 운동의 결실.
서울시는 이 예산으로 우선 은행나무 주변 신학빌라 2개동, 교회·상가건물을 매입, 철거키로 결정하고 주민들과 매입가를 협의 중이다.
이에 앞서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은행나무 살리기운동이 범 환경단체운동으로 확산되자 「보호수종합관리대책」을 마련, 보호수 주변지역 건축행위에 대해 환경영향평가를 의무화하고 보호수의 성장에 지장을 주는 주변건물은 철거, 또는 개축을 유도한다는 방침을 세웠었다.
서울시는 또 지난해 6월 이후 주택건설로 지하수맥이 끊겨 은행나무가 수분부족으로 마르기 시작하자 수분 공급 주사를 놓는 등의 응급조치로 나무를 보호해왔다.
지난 1년 동안 은행나무보호운동을 펴온 차씨는 『앞으로 북한산은행나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 환경보호의 상징물로 관리토록 건의할 생각』이라며 『12일동안의 단식농성이 헛되지 않아 기쁘다』고 했다.<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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