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들이 족집게 '기상 과외' 받는 까닭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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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모그가 발생하면 황사 먼지보다 더 작은 극미세입자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반도체 제조 공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국립기상연구소 전영신 박사)

"반도체 공장은 철저한 방진 체계를 갖추고 있지만 이 문제도 논의해 보겠습니다."(삼성전자 이재용 전무)

지난달 14일 낮 서울 강남의 한 중국음식점. 이 전무는 황사 전문가인 전 박사의 얘기를 듣고 진지하게 답했다. "야외 행사가 많은 삼성에버랜드의 경우 황사 땐 개장을 하지 않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겠다"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이날 오찬은 삼성전자 측이 황사 전문가들을 초청해 '특별 과외'를 받는 자리였다. 국립환경과학원 한진석 대기환경과장 등 환경보건 전문가들과 삼성 측 관계자 4~5명이 참석했다. 변화하는 기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주된 화제였다.

지난달 28일 울산 현대중공업은 기상청과 업무협약을 맺었다. 기상청의 상세한 기상 정보를 활용하면 태풍.호우.너울 등의 기상 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현대중공업은 기대하고 있다. 기업들이 기상청에 잇따라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기상서비스 업체에도 문을 두드린다. '날씨가 곧 돈'이라는 인식이 기업가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 "잘만하면 1000배 넘는 장사"=경남 진해의 STX조선은 2005년 기상청의 협조를 얻어 '산업기상정보시스템'을 구축했다. 태풍.호우가 발생하는 여름철에는 기상서비스업체 정보도 받는다. 야외 작업이 불가능하다는 예보가 나오면 휴무령을 내리고 작업장 설비는 안전한 곳으로 이동시킨다. STX조선 이수정 외업생산본부장은 "지난해 예년보다 3, 4척 많은 27척을 진수시킨 데는 기상정보 이용이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STX 측은 지난해 기상정보 구입에 400만원을 들였는데 매출은 1000배가 넘는 47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강원도 원주의 한솔오크밸리는 예약 당일 골퍼가 날씨를 문의하면 "두 시간 뒤엔 비가 그칠 테니 걱정 말고 오세요"라고 자신 있게 대답한다. 서비스 업체로부터 '족집게 날씨정보'를 제공받기 때문이다. 덕분에 예약하고도 나타나지 않는 골퍼가 기존 15%에서 5%로 줄었다. 콘도 숙박객을 위한 가수 초청공연도 비가 예보되면 미리 취소할 수 있어 손실을 줄였다. 한솔오크밸리는 지난해 날씨 정보에 1000만원을 들여 매출은 50억원이 늘어난 것으로 분석했다.

◆ 날씨로 고객 잡는다=신세계백화점은 이달 바겐세일 홍보우편물에 황사 마스크 교환 쿠폰을 동봉했다. 올해 강한 황사가 예상된다는 예보를 역이용했다. 판촉팀 이승희 과장은 "백화점 고객의 숫자는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이를 상쇄하기 위한 노력은 필수"라고 말했다. 이마트에서도 주간예보를 하루 세 번 받아서 제품 발주에 활용한다. 아이스크림.맥주.청량음료 등 여름 상품은 날씨에 따라 매출이 20% 정도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제과업체인 파리바게뜨는 날씨 정보를 제품 주문 컴퓨터 단말시스템에 올린다. 비 오는 날 특히 잘 팔리는 빵 제품이 있는데, 개별 점포업주가 제품 주문 때 이를 참고하고, 본사도 미리 늘어나는 주문량에 대비한다는 것이다.

◆ 날씨정보 가치는 최대 6조원=기상청은 국내총생산(GDP) 800조원 가운데 10%는 날씨의 영향을 받는 산업의 경제활동 결과로 보고 있다. 날씨정보 활용으로 거두는 경제적 가치도 연간 3조5000억~6조5000억원으로 판단하고 있다.

국내 기상산업 규모는 지난해 연간 190억원으로 미국의 1조원이나 일본 5000억원과 비교하면 아직 초보 단계다. 케이웨더 김종국 차장은 "날씨와 매출량을 분석한 자료가 쌓이면 상품 기획에 본격 활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상청도 적극적이다. 지난달 조직 개편에서 기상산업진흥과를 기상산업생활본부로 확대했고, 연내 기상산업진흥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강찬수.최익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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