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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간접자본 부실…통계조차 없다|"모래성 경제" 베트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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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베트남경제는 따오기와 같다. 숲 속에서 들리는 따오기의 울음소리를 듣고 따라 들어가지만 막상 따오기의 모습은 볼 수가 없다. 따오기를 찾아 헤매다 포기한 채 숲 밖으로 나오면 다시 멀리서 따오기의 울음소리가 들려 온다.』
현대종합상사 최영석 베트남 지사장은 베트남에 진출한 한국기업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잡힐 듯이 잡히지 않는 따오기경제」라는 말로 대신한다.
베트남이 장기적으로 성장가능성이 큰 나라이고 이에 따라 우리 기업의 진출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위험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조영복 대한무역공사 베트남관장은『베트남에는 외국인 투자 법이 마련돼 있으나 시행령이 제대로 돼 있지 않아 실제로 투자하는데는 많은 위험요소가 있다』며 『정부의 고위관리들은 경제개발의욕을 갖고 있으나 하부구조는 관료주의에 젖어 있다』고 말했다.
조 관장은『한국에는 과거 베트남 전 때만을 생각하고 베트남을 쉽게 보려는 경향이 있으나 오랜 독립전쟁에서 미국 등 강대국을 물리친 사례에서 보듯이 결코 만만한 나라가 아니며 우리나라에는 베트남 전 이후 베트남전문가가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베트남은 시장경제의 도입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하급관료의 부패, 밀수 등 각종 사회악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위관료들 부패>
레반 트리옛 베트남상무관광부장관은 작년 말 정기국회에서『90년 한해동안 15만대이상의 오토바이가 밀수입됐으며 91년에도 전자제품·맥주·자전거·의류·화장품 등 이 전년보다 더 많이 밀반입 됐을 것』이라고 보고했다.
트리옛 장관은 또『91년 중 1천70만 달러 어치의 밀수품을 압류했고 3만여 건의 밀수사례를 적발했음에도 불구하고 밀수로 들여온 외국상품의 가격이 베트남상품보다 값이 싸 베트남 내 2만여 국영기업 중 30%가 도산했으며 다른 회사들도 비틀거리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1∼10월중 3억9천만달러와 6t이상의 금이 베트남에 반입돼 대부분 밀수품의 대금지급수단으로 쓰여졌으며 밀수업자들은 과거 중국과 캄보디아국경의 제한된 활동에서 벗어나 국제루트의 선박과 항공기까지 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트남의회는 이에 따라 작년 12월19일 하루종일 부정행위와 블랙 마키팅 근절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는데 국회의원들은 이같은 사회악의 확산이유가 비효율적인 법 집행, 법규정의 맹점, 관계당국의 은밀한 보호에 있다고 지적했다.
보반 키옛베트 남 총리는 이와 관련, 『올해 정부의 최대현안은 인플레의 진정과 사회악의 일소를 위한 법질서의 존중』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베트남에서도 특히 호치민은 심한 개방 병을 앓고 있다.
호치민 시내에는 소매치기와 강도가 들끓고 있으며 거지와 부랑자가 떼를 지어 돌아다니고 있다. 실제로 취재팀이 호치민에 체류하는 짧은 기간 중에도 두 차례 소매치기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외국기업의 투자에 어려움을 주는 것은 이같은 사회악보다도 사회주의 정치체제와 시장경제의 공존에서 오는 혼란과 하급관료조직의 비효율성이다.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인 이중가격도 투자에 어려움을 주고 있다.
1년 반 전에 베트남에 진출한 한 국내종합상사가 지사 사무실을 얻는 과정에서 겪은 고충 담은 베트남에 진출하려는 국내기업들에 참고가 될 만하다. 모 상사는 1년여 전 지사 건물로 쓰기 위해 한 건물주와 한달 2천5백 달러에 임차계약을 맺었다.
베트남의 물가를 생각하면 엄청난 바가지 격인 셈이다.
그런데도 집주인은 며칠 후 일방적으로 계약해제를 통보해 왔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세금으로 절반 가량을 떼인다는 것이다.
이 회사는 결국 몇 달간의 승강이 끝에 계약금액을 4천5백 달러로 올려 줘 세금을 떼고도 집주인이 실질적으로 2천5백 달러를 손에 쥘 수 있도록 할 수밖에 없었다.
고용계약을 체결할 때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베트남의 법률은 외국회사가 베트남인을 고용할 때는 노동부와 계약을 맺도록 돼 있다. 월급을 회사가 직접 고용된 근로자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베트남정부에 주면 여기에서 정부가 세금 등을 빼고 근로자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재정적자 눈덩이>
호치민시의 경우 법률과는 상관없이 호치민시 소속의 외국기업 서비스 사(SCFM)와 고용계약을 맺도록 하고 있으며 SCFM과 계약을 하지 않을 경우 외국기업의 법인등록을 받아 주지 않고 있다.
호치민시에서 세 수입을 늘리기 위한 것이다. 베트남정부는 현재 외국기업의 불만이 높아지자 노동부와 호치민시의 업무영역을 조정중이다.
외국기업이 겪는 또 다른 어려움은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주의의 논리가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주의를 고수하고 있는 베트남은 기업의 이익을 극소화하고 이익을 국민에게 골고루 분배하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기업의 이익을 극대화, 재투자하는 것이 어렵도록 각종 사회제도가 만들어져 있다.
선경 이 효 베트남 지사장은『베트남은 무척 자유스러워 보이지만 눈에 안보이게 공산주의교육이 실시되고 있다』며『현재 많은 한국기업들이 베트남의 복잡한 행정절차를 피해 불법으로 임 가공 공장을 차려 두고 있으나 문제가 생길 때는 법적인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시설을 몰수당할 위험이 없지 않다』고 말했다.
이 지사장은 또『베트남은 외국기업의 투자를 마구 받아들이지 않고 선별하고 있으며 국내 대기업의 투자허가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사례도 있다』며『베트남이 필요할 때는 불법행위를 놔두지만 필요 없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쫓겨날 수 있으며 이미 그러한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 지사장은『베트남은 블랙 마킷까지 정부가 소리 없이 조종할 만큼 막강한 경찰력과 군대를 보유, 언제든지 문을 닫아걸 수 있다』고 덧붙였다.
대한무역진흥공사 조 관장도 이와 관련,『시장경제로의 전환과 외국기업의 투자유치를 위해서는 미국의 엠바고보다도 베트남 공안당국의 엠바고가 먼저 풀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회간접자본의 부족과 늘어나는 외채, 재정적자도 베트남경제개발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베트남의 도로 총 연장 10만km중 포장이 된 곳은 10%정도에 불과하며 하노이와 호치민을 연결하는 협궤철도는 70시간이 걸릴 정도로 느리다.
화차는 총수요의 60%, 객차는 40%에 머물고 있다.
항만의 경우 연간 1천만t의 화물을 취급할 수 있을 뿐이다. 선박도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항만을 통해 취급되는 화물은 베트남이 가진 긴 해안선과 좋은 항구에도 불구하고 전체화물의 5%에 불과하다.
이밖에 전력·통신 등 모든 사회간접자본이 부족하다. 더 심각한 것은 베트남정부가 자신들에 대한·정확한 통계조차 갖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베트남의 외채는 90년 말 현재 1백30억 달러에 이르고 있는데 대부분이 소련과 동구에 의존하고 있으며 유럽에 대한 채무가 20억 달러, 일본 10억 달러 등이다.
정부의 재정적자도 해마다 누적되고 있으며 90년의 경우 국내총생산의 7·7%에 달하는 3억3천4백만 달러에 이르렀다.
이밖에도 국제적인 상 관습에 대한 이해부족, 인가절차의 복잡함, 유통의 혼란, 기술수준의 낙후 등 어려움이 산적해 있다.
이같은 투자여건의 미비로 아직까지 제조업에 대한 외국인의 투자는 많지 않으며 대부분의 투자가 석유등 자원개발에 몰려 있다.
베트남에는 2만여 개의 국영기업이 있으나 자본과 경영능력부족으로 이미 1만5천여 개의 기업이 도산했거나 도산 직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선경 이지사장은『많은 기업들이 비효율적인 경영으로 문을 닫았으며 일부 회사는 부도가 난 뒤 기업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도망을 가는 등 사회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베트남은 정부의 시장경제전환노력에도 불구하고 이같은 많은 문제점 때문에 아직까지는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베트남은 지난해 경제성장률 5·6%, 농업생산 4∼5%증가를 목표로 했으나 실제로는 경제성장률 2·4%, 쌀 생산 1·1% 증가에 그쳤다.
물론 베트남정부도 자신들의 문제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
지난해 7월에 열린 제7차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는 개혁에 대해 부정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갖고 있는 원로들의 퇴진이 거론됐으며 젊은 세대에 의해 경제전반에 걸친 관리능력이 강화돼야 할 것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행정절차도 복잡>
베트남의 민주적인 정치체제도 외국기업의 진출에는 오히려 장애요인이 되고 있다. 베트남은 국부인 호치민이 사망한 후 집단지도체제로 전환, 모든 의사결정을 회의에서 결정하고 있으며 권한이 하부조직에 대폭 이양돼 있다.
이에 따라 외국기업들은 행정관청의 협조가 필요한 사항에 대해 고위층에서 말단조직에까지 손을 쓰지 않으면 일 처리가 어렵게 돼 있다.
선경 이지사장은『베트남에는 혼자서 모든 일을 결정할 수 있는 절대결정권자가 없으며 결정권을 상하 공무원이 나눠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베트남의 관료조직이 크게 부패한 것은 아니다.
이지사장은『정부고위층의 부패가 문제된 적은 없으며 말단관리가 다소 오염돼 있으나 푼돈을 받고 눈을 감아 주는 정도이지 자본주의사회에서의 부패와는 내용이 다르다』며『세관이나 경찰도 2백∼3백 달러 정도의 촌지는 받지만 액수가 커지면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금성사 최보헌 지사장은『베트남은 아직 구매력이 부족하고 썩은 곳도 있으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말하고 『국내기업들이 베트남에 진출하려면 베트남의 밝은 곳과 어두운 면을 잘 보고 실리를 추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치민시=글 길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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