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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RIReport] '비교우위론' 이 선거판에서 안 통하는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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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어떻게 하면 집토끼와 산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을까. 대선 후보들의 공통된 고민거리다. 어느 후보가 둘 중 하나라도 잡으려고 어느 한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순간 경쟁 후보는 그를 살짝 밀쳐 넘어지게 만들 수 있다. 따라서 대선 게임에서 이기려면 두 토끼 모두를 놓치는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말고 중도를 견지해야 한다.

왜 중도인가? 미국의 경제학자 호텔링은 1929년 논문에서 두 기업이 위치 경쟁을 벌이면 둘 다 중앙에 자리잡게 됨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 정치학자 다운스는 1957년 호텔링의 이론을 선거에 적용해 미국과 같은 양당제의 경우 두 당의 선거공약은 중위(中位) 투표자가 선호하는 중도로 수렴할 수밖에 없음을 밝혔다. 다시 말해 두 당은 집권에 필요한 과반수의 득표를 얻기 위해 중간수준의 선호를 가진 투표자에게 맞춘 정강 정책을 제시하게 된다. 따라서 두 당의 정강정책은 거의 일치하게 된다는 얘기다.

호텔링의 결과가 현실적이긴 해도 이상적인 것은 아니다. 중도 우파와 중도 좌파가 각자의 색깔을 분명히 해 경쟁하는 것이 유권자의 선택을 돕는다는 측면에서 가장 바람직하다. 이렇듯 '이상'과 '현실'이 일치하지 않다 보니 여론을 주도하는 오피니언 리더들도 종종 이상과 현실을 혼동한다.

가까운 예로, 중앙일보 2월 13일자 '리카도의 훈수'란 제하의 칼럼은 대선 후보들이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리카도의 '비교우위 이론'에 충실할 것을 주문했다. 이 주문이 이상적이긴 해도 이것을 따르는 후보는 대선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이 호텔링의 현실 설명 이론이다.

게임 참가자들의 협조가 가능한 협조적 게임이나 비(非)협조적이더라도 상생(윈-윈)이 가능한 정합(포지티브 섬) 게임에서는 리카도의 비교우위 이론이 잘 적용된다. 예컨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은 비협조적 게임이지만 포지티브 섬(positive-sum) 게임이므로 두 나라는 FTA를 통해 각 나라의 비교우위가 있는 산업을 더욱 발전시켜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하다.

하지만 대선은 승자가 독식하는 비협조적 영합(제로 섬) 게임이다. 상대의 승리는 곧 나의 패배를 의미한다. 이런 제로 섬(zero-sum) 게임에서 승리하려면 비교우위가 아닌 '절대우위'를 강조하며 중원(中原)을 장악해야 한다. 다시 말해 후보들의 공약은 비슷하기 때문에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마음을 살 수는 없다. 이처럼 경쟁 후보 간의 차별화가 어려울 때 위력을 발휘하는 전략은 바로 상대의 부정적 측면을 공략하는 네거티브 캠페인이다.

선거 때마다 후보들은 앞다퉈 네거티브 캠페인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면서도 결코 지켜지지 않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로도 네거티브 캠페인을 구사한 후보는 페어플레이를 하는 후보에게 이겼다. 예컨대 2002년 대선이 그랬다. 한 후보 측이 제기한 상대방 후보의 의혹은 지금은 모두 거짓으로 판명됐지만, 그러나 이미 게임은 그 후보가 이긴 상태로 끝났다. 특정 후보가 '네거티브'를 선택했을 때 다른 후보는 '페어 플레이(fair play)'를 선택하면 그 결과는 특정 후보의 승리와 상대방 후보의 패배로 나타난다는 게 경제학의 결론이다.

이런 네거티브 전략 게임에서 가장 바람직한 결과는 두 후보 모두 페어 플레이를 선택할 때의 결과로, 각 후보는 절반의 승리 가능성과 더불어 국민 분열을 최소화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 게임에서 이것이 가능하리라 믿고 네거티브 대신 페어 플레이를 선택하는 후보는 순진하다 못해 바보다. 앞에서는 네거티브 전략을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더라도 뒤로는 네거티브를 사용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최선의 선택'이다.

그래서 오피니언 리더들은 유권자들이 네거티브 캠페인에 현혹되지 말고 각 후보의 공약을 꼼꼼히 따져 비교해 볼 것을 권유한다. 맞는 말이긴 하지만 비현실적인 얘기다. 호텔링 이론이 예견하듯 각 후보의 공약은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더구나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며칠 밤을 새워도 제대로 평가하기 힘든 공약을 보통 사람들이 어떻게 평가하겠는가. 시민단체나 언론이 공약을 평가하고 점검한다지만 그 진정성과 정확성을 의심받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설령 어느 유권자가 혼신의 힘을 다해 후보들의 공약을 비교해 본들 그의 한 표는 전체 유권자 3500여만 명에 비하면 그야말로 구우일모(九牛一毛)에 불과하다. 따라서 '합리적' 유권자는 그런 수고를 하려 들지 않는다. 이런 유권자에게 인터넷이나 UCC(User Created Content.사용자 제작 콘텐트)를 통한 네거티브 캠페인은 생각보다 큰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네거티브 캠페인의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후보를 제대로 알릴 수 있을까? 우선은 허위 사실에 기초한 '악성 네거티브'에 대해서는 당선되더라도 당선 무효로 처벌할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강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선거 게임의 속성상 악성 네거티브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사실에 기초한 네거티브 게임에 대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미국의 경우에서 알 수 있듯이 민주주의 제도 하에서 현실적으로 이것을 규제할 방법은 없다. 2004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 케리 후보의 베트남전 참전 경력이 과장됐다는 사실에 기초한 '거짓말쟁이 케리' TV 광고는 케리의 패배에 일조했다. 미국의 경우에서 보듯 유권자들이 '합리적'인 한 사실에 기초한 네거티브는 피할 수 없다는 것이 경제학과 게임 이론의 결론이다. 다만 네거티브를 계속 반복해 유권자들이 네거티브에 대해 질리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 그나마 그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현실적 방법이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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