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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감독 장선우 시나리오·평론 직접 쓴다|임 영<영화평론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장선우 감독(1952년)의 작품을 살펴보자.
①『서울예수』(86년·선우완과 공동 연출)
②『성공시대(88년)
③『우묵 배미의 사랑』(90년)
④『경마장가는 길』(91년)
보다시피 단 4편으로 그는 어느덧 중요한 감독으로 떠오르고 있다.
『경마장가는 길』은 전문가와 상당한 수준의 영화팬들 사이에서 좋다, 나쁘다 의견이 구구한 가운데 현재 극장에 걸려 있다. 그가 한국 영화계에선 지금껏 볼 수 없었던 스타일의 지성적인 영화를 내놓은 것만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는 한 작품마다 전작에 비해 자꾸 좋아지는 타입의 감독인 것도 분명한 것 같다.
그는 지금 승려 출신시인 고 은씨의 소설『화엄경』의 시나리오 작업을 하기 위해 시골에 내려가 틀어박혀 있다. 화엄경이라면 석가가 도를 이룬 뒤 깨달은 대로 설했다는 경 문으로 알려져 있다. 소설의 내용은 석가시대의 어린 선재가 53명의 스승을 만나 진리를 깨닫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인데, 장선우는 그 고대인도로 되어 있는 배경을 현대의 한국으로 옮겨올 작정이란다. 그래서 시나리오가 언제 완성될 것인지, 또 과연 제대로 될 것인지 자신도 모르겠다는 얘기다.
적당한 시기엔 원작자고 은과 함께 작품에 구체성을 부여하기 위해 인도여행도 할 예정이란다. 그의 말로 미루어 보면 아마 제작자 이태원씨도 마음 단단히 먹고 이 영화를 만들어 볼 작정인 것 같다.
장선우는 자기 영화의 시나리오를 직접 쓰는 감독 중 한 명인데 지금까지『서울예수』『성공시대』『껌』『남부군』『붉은 방』『남한강』등을 썼다. 또 방송극도「베스트셀러극장」등을 비롯해 15편쯤 썼다. 뿐만 아니라 평론작업에 속하는『새로운 영화를 위하여』(87년)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대개 감독이 시나리오를 쓰고 저널리즘에 속하는 글을 쓰는 경우는 완전 무장한 것과 마찬가지로 그렇게 든든할 수 없는 법이다.
그는 당초 서울대 인류학과 재학시절 탈춤·마당극 등 전통예술에 바탕을 둔 연극활동을 했다. 그러던 중 회의를 느끼고 좀더 큰 매체를 하고 싶은 욕망이 생겨 영화 쪽에 손대기 시작했다. 그가 소속했던 서울영화 집단 동인으로는 박광수(칠수와 만수·그들도 우리처럼)·황규덕(꼴찌부터 일등까지 우리 반을 찾습니다)·송능한·홍기선 등 현재 일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감독·시나리오 작가들이 있다.
그의 실질적인 데뷔작『성공시대』는 피카디리 극장에서 12만 들었다. 개봉 때는 당시 평민당 당수였던 김대중씨가 구경와 화제가 되어 신문에 나기도 했었다.
그가 쓴 영화화되지 않은 시나리오『붉은 방』은 역시 운동권 배경으로 아무 것도 아닌 소시민이 어쩌다 우습게 걸려들어 고문당하는 등 혼나는 얘기를 그린 것이었다는데 촬영직전에 그만 흐지부지되었다.
『성공시대』발표 후만 해도 긴가민가했었는데 장선우의 주가가 결정적으로 올라가기 시작한 것은『우묵 배미의 사랑』이후라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명보극장에서 불과 3만밖에 안 들었지만 전문가들 사이에선 정말로 좋은 영화라고 진심으로부터의 칭찬이 자자했다. 자못 해학적인 터치의 연출이었지만 그 밑바닥엔 인생을 살아가는 슬픔 같은 것이 흥건히 괴어 보는 사람의 가슴을 치는 것이 있었다.
이 영화를 찍을 때는 준비작업의 일환으로 박중훈·최명길 등 출연자와 함께 장선우도 약 1주일간 미싱을 배웠다.
이 영화는 대도시 변두리에 곤충처럼 묻어 사는 재봉공 남녀의 애환을 그린 얘기였다.
이번에 『경마장가는 길』을 작업할 때는 시나리오단계에서부터 지극히 회의적이었다. 대사만으로 이끌어 나가는 이러한 형식의 영화가 과연 제대로 생긴 영화가 될 것이냐-하는 걱정이었다.
필자는 이 영화를 임권택 감독과 함께 봤는데 영화가 끝나자 그는 한참 박수를 치고 있었다.
장선우는 4년 전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근근히 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전엔 부인이 도왔었다. 이 사람 역시 한국 영화의 미래를 짊어질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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