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 아세안정상회담/“이념보다 경제협력” 궤도 수정(포커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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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창설 25주년 맞아 새로운 기틀 마련/강대국 입김 벗을 「경제회의」안 관심/무리없는 역내협력 조정이 과제
국제공산주의의 위협과 베트남의 팽창주의에 맞서 지난 67년 결성,올해로 창설 25주년을 맞은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이 27일 싱가포르에서 개최될 제4차 정상회담을 계기로 제2의 탄생을 선언한다.
공산주의종주국 소련이 이미 해체된데다 사회주의의 최후보루 중국과 베트남마저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상황이어서 아세안의 궤도수정은 어차피 불가피해진 상황이다.
당초 반공을 공통분모로 출범한 아세안은 캄보디아 사태해결을 분수령으로 냉전종식이 마무리됐다고 판단,이번 정상회담을 발전적 탈바꿈의 신호탄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이다.
아세안정상회담이 5년만에 어렵사리 마련된 것만 보아도 태국·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네시아·브루나이·싱가포르 등 아세안 6개국이 이번 회담에 얼마나 큰 비중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일단 좌절됐다고는 하나 베트남·스리랑카·라오스 등의 신규가입문제도 정상회담에서 본격 거론될 전망이어서 미국·일본 등 강대국들의 관심도 만만찮다.
비록 아세안이 『공산주의의 확대를 막는다』는 기본취지에서 출발했다 하더라도 그 중심기둥은 역시 경제협력이다.
그럼에도 불구,그동안 아세안간의 경제협력은 사실상 구두선에 머물러왔다.
이와 같은 허수아비신세를 면하기 위해 아세안정상들은 지난 76년 인도네시아 발리에 모여 「아세안 협력선언」과 「동남아시아 우호협력조약」을 체결하기에 이르렀다.
즉 분쟁의 평화적 해결을 규정하는 한편 아세안이외 동남아시아국가들의 참가도 유도,실제적인 행동규범을 마련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이와 함께 출범 20년을 맞은 지난 87년에는 새로 구성된 아키노정부의 주최로 필리핀 마닐라에서 개최된 아세안정상회담에서 『아시아판 유럽공동체(EC)를 겨냥한다』는 선언을 채택하기도 했다.
인구 3억1천만명을 권속으로 거느린 아세안은 이미 「세계의 성장센터」로 불릴만큼 경제실세로 등장한 상태다.
따라서 이번 아세안정상회담의 골자는 역내경제협력을 어떻게 무리없이 조정하느냐에 모아질 수 밖에 없다.
아세안은 결성직후부터 ▲특혜관세제도의 도입 ▲식료품 비축협정체결 등 경제문제에 역점을 두어왔다.
그러나 결속을 상징한다고 선전됐던 공동프로젝트는 소규모 비료생산에 머물렀을 뿐 이렇다할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전자부품·의류 등의 역내무역은 꾸준히 증가했으나 싱가포르·브루나이를 제외한 아세안 4개국의 역내무역이 전체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2%에 지나지 않았다.
▲아세안각국의 수출경쟁관계 ▲각국 경제발전의 차이 ▲상이한 종교,문화적 기반 등이 그 원인이었다.
이와 같은 괴리를 메우기 위해 아세안 각국은 다양한 방안을 내놓았다. 우선 태국이 제안한 「아세안 자유무역지대(AFTA)」 구상을 들 수 있다.
농업생산품을 제외한 전상품의 관세를 앞으로 15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0∼5%까지 낮춰 역내의 무역을 활성화시키겠다는 복안이다.
이와 함께 인도네시아는 「공동효과특혜관세(CEPT)」를,필리핀은 「아세안경제협력헌장」을,싱가포르는 「성장의 삼각지대론」를 각각 제시했다.
각국의 주장을 포괄한 「아세안 경제공동체(AEC)」 이론까지 등장했다.
따라서 이번 정상회담에서는 각 회원국들을 납득시킬만한 경제협력의 틀을 마련하는 일이 초미의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냉전적 사고에 입각,지난 71년 제창된 「동남아시아 중립지대(ZOPFAN)」안을 대체할 새로운 정치철학을 주조해내는 일도 큰 과제다.
특히 미국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해 일본을 주요자금원으로 삼으려는 「동아시아경제회의(EAEC)」 구상이 아세안국가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얻고 있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AEC안은 공산주의라는 「공동의 적」을 상실한 아세안이 미국등 강대국의 입김에서 벗어나 홀로서기를 선언한 최초의 움직임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진세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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