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만큼 화제… 영화 『연인』-뒤라스 자전적 작품 명감독 아노 연출… 파리서 개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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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프랑스 여류작가 마르그리트뒤라스(77)의 자전적 소설 『연인』(L'AMANT)이 명장 장자크 아노 감독(48)에 의해 영화화, 22일 파리에서 개봉됐다.
현존하는 프랑스의 대표적 작가 가운데 한 명인 그녀가 지난 84년 발표,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된 이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연인』(제작자 측에서는 한자어 『정인』을 제목으로 병기하고 있음) 개봉은 원작의 경가만큼이나 큰 화제와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프랑스 식민 치하에 있던 1920년대 베트남을 배경으로 15세된 프랑스 소녀(마르그리트뒤라스)와 중국 청년간의 뜨거운 첫 사랑이라는 비교적 단순한 스토리가 이 영화의 내용. 그러나 자신의 실제경험을 바탕으로 뒤라스가 쓴 소설 『연인』을 읽으면서 느낄 수 있는 첫사랑의 분위기와 미세한 감정 하나 하나를 영상으로 재현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는 게 연출자인 아노감독의 설명이다.
『베어』 『장미의 이름』 『불을 찾아서』 등 대형화제작을 잇따라 발표, 세계적으로 흥행에 성공한 아노감독은 「머니 메이커」로 통하는 프랑스의 명감독. 이번 작품을 위해 그는 1년 이상 베트남에 머무르면서 현지 분위기와 실정을 철저히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1920년대 메콩강과 사이공 시를 완벽하게 재현하는데 성공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가 가장 신경을 쓴 것은 배역 선정으로 주인공인 뒤라스 역을 맡은 제인 마치(17)의 발굴에 대해 그 스스로 「행운」이라고 말하고 있다. 프랑스·영국·독일·이탈리아·미국 등을 돌며 배우를 공모, 응모한 7천명 가운데 선발된 1백50명을 대상으로 카메라 테스트 등 철저한 심사과정을 거쳐 최종 선발된 신인 여배우가 바로 영국소녀 제인 마치. 15세 당시의 뒤라스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꼭 닮은 마치는 전혀 신인답지 않은 완벽한 연기로 제작진을 놀라게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치의 상대역인 중국 청년은 홍콩배우인 토니 륭이 맡았는데 그의 캐스팅 역시 행운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 동·서양 두 배우의 기막힌 호흡과 열연이 영화 『연인』의 예술적 성공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는 중론이다.
소설 『연인』의 영화화를 처음 생각한 것은 프랑스의 대표적 영화제작자 겸 감독인 클로드베리로 그는 이 영화에 프랑스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1억5천만 프랑(약2백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이로니컬한 얘기지만 바로 자신의 얘기임에도 불구, 정작 뒤라스 자신은 아직 이 영화를 못 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노감독은 시사회 때 그녀를 초대하지도 않았다. 제작 준비 단계부터 둘 사이의 불화가 워낙 심했기 때문으로 아노감독은 제작에 들어가면서 그녀를 아예 배제한 채 자신의 해석대로 영화를 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과정에서 그녀는 독자적으로 자신의 소설 『연인』을 시나리오로 각색했으나 아노감독이 이를 채택하지 않자 지난해 『북중국의 연인』이란 시나리오로 발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세계시장을 겨냥해 만든 이 영화는 말도 불어가 아닌 영어로 제작됐다. 두 주인공이 모두 영어밖에 몰라 어쩔 수 없었다는 게 제작자의 설명. 【파리=배명복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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