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헤어스타일] '머리'를 과감히 리모델링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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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BM 코리아 이휘성 대표는 퓨전 올빽 스타일이다. 전면과 옆면의 모습에서 부드러움과 카리스마를 볼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
반백의 머리를 무스로 빗어 올렸다. ‘올빽’ 스타일이다. 하지만 1970~80년대와는 다르다. 그때는 포마드를 잔뜩 발라 머리를 완전히 뒤로 넘겼다.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무스를 발라 머리를 뒤로 넘기는 것은 같지만 머리카락의 자연스러운 웨이브는 살린다. 이것이 ‘퓨전 올빽’ 스타일이다.

이휘성(48) IBM 코리아 대표의 헤어스타일이 바로 퓨전 올빽이다. 헤어스타일만 보면 젊음의 신선함과 파워를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니다. 머리카락의 자연미를 살리기 때문에 부드러운 느낌이 있다. 결국 퓨전 올빽은 힘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줄 수 있는 것이다.

힘과 부드러움. 이것은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의미한다. 헤어디자이너들은 “퓨전 올빽은 ‘중성’의 이미지를 준다”고 말한다. 그래서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어울리고 헤어스타일의 세계적인 한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

잘만 하면 이 스타일은 누구에게나 어울린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힘과 부드러운 이미지를 준다. 하지만 대한민국을 사는 50 전후의 남성들에게는 쉽지 않다. 수십 년 동안 한국 남성의 전형적인 헤어스타일은 이른바 ‘2 대 8’ ‘3 대 7’ 등으로 불리는 가르마형 머리였다.

그것도 무스나 젤을 발라 머리를 예쁘게 가른 가르마다. 한국 40~50대 남성 100명 중 90명 이상이 이 헤어스타일을 유지한다. 어느 날 갑자기 헤어스타일을 바꾼다는 것이 어찌 쉬우랴.

“2년 전 TV에서 인터뷰를 한 저 자신의 모습을 봤습니다. 객관적으로 보니 헤어스타일이 촌스럽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일과 관련해서는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해 왔는데 제 자신에게는 그렇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과감히 바꿨습니다.”

“CEO의 변신도 무죄”

이 대표의 얘기를 들으니 문득 떠오른 말이 있다. ‘여자의 변신은 무죄’라는 말이다. 하지만 여자의 변신만 무죄인 것은 아니다. ‘CEO의 변신도 무죄’다. CEO의 변신에 면죄부를 주자. 얼마나 많은 CEO가 자기 변신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을까?

이 대표는 “변신에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다”고 말했다. “미용실에 간다는 것 자체가 쑥스러웠다”는 것이다. 하긴 아직도 50대 대부분은 이발소에서 머리를 깎는다. 다양한 헤어스타일을 꾸미려면 이발소보다는 미용실이 적합하다.

그런데 미용실이 어색하다는 50대가 아직도 많다. ‘이발소=남성’ ‘미용실=여성’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대표는 “미용실에 갈 용기가 안 나 비서에게 SOS를 쳤다”며 “변신에 용기를 준 비서에게 감사한다”는 말을 더했다.

한편으로 이 대표의 변신은 불가피한 구석이 있다. 세계적 다국적 기업 CEO인 만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어야 한다. 세계 사장단 회의라도 가면 그는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다. ‘촌스러운’ ‘시대에 뒤진’ 등의 이미지는 곤란하다.

“외국에 나가보면 헤어스타일에 신경을 안 쓸 수 없습니다. 대부분 CEO의 헤어스타일이 우리와 달라요. 그들은 자연스럽고 부드러운데 대부분의 국내 CEO는 여전히 70~80년대 스타일을 고수하지요.”

이 대표의 퓨전 올빽은 세계적 감각에 뒤지지 않는다. 헤어스타일과 관련된 세계 트렌드는 중성 이미지의 추구다. 이런 스타일을 포스트 모던 스타일로 부른다. 힘과 유연성을 동시에 필요로 하는 현대 사회의 흐름에 헤어스타일도 따라가는 것이다. 포스트 모던 스타일에는 또 남녀 구분이 없다. 여성 CEO들의 중성 이미지 추구 역시 하나의 흐름이다. 여성 CEO 역시 강하고 부드러운 이미지를 주는 데 무리가 없다.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된 칼리 피오리나 전 휼렛패커드 회장의 헤어스타일은 이 대표와 흡사하다. 단지 피오리나 전 회장의 머리색이 갈색과 회백색이라는 점뿐이다. 이화경 오리온 그룹 회장은 머리가 들쭉날쭉한 새기(saggy) 스타일이다.

영화 ‘왕의 남자’에 출연한 이준기 스타일을 생각하면 된다. 이 회장은 여성 CEO로 카리스마가 돋보인다. 스타커뮤니케이션과 여성신문사 CEO인 조안 리 대표의 헤어스타일도 대단한 파격이다. 어떻게 보면 완전 남성 스타일에 무스와 약간의 귀밑머리가 여성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게하드 슈미츠 조선호텔 총지배인은 5대5(왼쪽 아래), 퓨전 올빽(오른쪽) 등의 헤어스타일 뒤에 2대8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반곱슬은 2대 8도 어울려

하지만 중성적인 이미지를 추구하는 포스트 모던 스타일이 세계적 흐름이라 해서 모두 이를 따를 필요는 없다. 남성의 전형적인 헤어스타일인 2대 8, 3대 7 스타일도 하기 나름이다. 조선호텔의 게하드 슈미츠(65) 총지배인을 보면 알 수 있다. 아시아 전역을 다니며 호텔을 맡아 관리해 왔던 그는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호텔리어다.

그런 그가 다양한 헤어스타일과 세계적 흐름을 모를 리 없건만 2대 8 스타일을 고수한다.
헤어스타일에 관한 한 그는 과감하다. “나이에 따라 헤어스타일을 바꿨다”는 것이다. 그가 들려주는 자신의 헤어스타일 변화는 세계 헤어스타일의 생생한 역사를 알려준다.

“60년대에는 양옆으로 포마드를 바르고, 앞머리는 자연스럽게 웨이브로 흘러내리게 하는 맘보 스타일이었습니다. 모두가 엘비스 프레슬리가 되고 싶었던 것이지요. 그러다 70~80년대 올빽이 유행했어요. 가르마 없이 머리를 뒤로 넘기고 이마 전체를 드러내 단정함과 강인함을 표현했지요. 그러나 80년대 이후에도 3대 7, 5대 5 등 여러 번 스타일을 바꿨습니다. 90년대 이후 지금의 2대 8 스타일을 했습니다. 제게 가장 어울린다고 생각해 지금껏 이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지요.”

바로 그거다. 헤어스타일에 대한 감각을 갖추고 자기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기만 한다면 굳이 스타일을 바꿀 필요가 없다. 하지만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의 2대 8 스타일은 70~80년대 구식이 아니다. 칼로 두부 자른 듯 정확한 가르마가 아니다. 가르마가 자연스럽고 부드럽다. 무스나 젤을 바르지 않았다.

이런 2대 8 스타일이 모두에게 맞는 것은 아니다. 게하드 총지배인이 갖고 있는 몇 가지 특징이 있어야 한다. 우선 머리숱이 적거나 가늘면 곤란하다. 그런 경우 머리카락이 흘러내리고, 이를 막으려면 무스나 젤을 발라야 한다. 구시대의 2대 8이 되는 것이다. 게하드 총지배인은 머리숱이 꽤 되고 약간 반곱슬이어서 무스나 젤을 바르지 않아도 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는다. 그래서 2대 8도 어울린다.

그래도 2대 8은 보수적 냄새를 풍긴다. 패션도 헤어스타일에 따른다. 정장이나 넥타이, 셔츠, 액세서리가 모두 보수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감각과 철학을 갖고 있다면 아무리 비싼 명품이라 해도 기성복은 어울리지 않는다.

기성복은 이미 유행과 트렌드를 따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지금도 파리의 개인 맞춤 전문 브랜드 샤벳을 고집한다. “기성복 디자인은 너무 다양해 고르기도 힘들고 취향에도 맞지 않는다”는 그는 “단골이다 보니 오랜 친구 같은 클라이언트가 돼 편하다”고 말했다.

결국 헤어스타일에는 답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자신의 스타일과 성격에 맞춰야 한다. 하지만 자기 외형의 특성, 트렌드에 대한 관심과 이해, 감각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기 스타일을 지킬 수 있고 규격화된 2대 8, 3대 7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코노미스트 8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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