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있는 자에만 양보하는 일본/이석구 동경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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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노태우 대통령과 미야자와 기이치(궁택희일) 일본총리의 이틀에 걸친 정상회담이 모두 끝났다. 양국정상은 이 자리에서 서로 하고 싶은 얘기들을 했다. 한국은 정신대등 과거와 관련, 일본이 진상규명과 배상을 통해 진실로 사죄할 것을 요구했다.
또 무역역조 개선을 위한 눈에 보이는 조치를 강조했다. 일본은 정신대에 대해 사죄는 하면서도 배상은 소극적이었고 무역역조는 원론적으로 대처했다. 그러면서 냉전종식에 따른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강조했다.
각기 자국입장의 재천명에 그친 이번 회담에 관해 한일 언론은 회담을 모두 크게 다루면서도 시각은 크게 달랐다.
한국언론이 「사실상 얻은 것이 없고 양국간 감정의 골을 깊게했다」라는 식으로 보도한 반면,일본측은 「한일,무역불균형 시정을 위한 실천계획합의」「정신대공식사죄」 등을 강조했다. 18일 조간부터 일본 지면은 정치개혁등 일의 당면 현안으로 돌려졌다.
일본은 과거에 대해 말로 사죄하면서도 배상문제에 대해서는 법적처리가 끝난 것이라고 보고있다. 또 기술이전이나 무역역조는 민간부문이라는 입장에서 한발짝도 벗어나지 않고 있다. 계속되는 회담과 협의가 무색하다는 느낌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상대를 놓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같은 현실을 인정,과거문제는 우리도 계속 원칙을 강조하고 경제문제는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구차한 구걸이나 떼를 쓰는 것 같은 인상을 내외에 주어서는 더욱 안될 일이다.
그리고 우리 자신도 한번 냉정히 돌아봐야 하겠다. 엄밀히 따져볼때 한일 무역역조가 과연 오로지 일본시장의 폐쇄성에서만 비롯되는 것인가.
우리는 흔히 일본이 미국에 양보한 것을 예로 들지만 그것은 양보가 아니다. 일본이 미국의 힘,즉 미국시장을 잃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 마지못해 한 조치라는 것을 알아야 하겠다. 우리는 일본이 항상 크게 보이지만 일본인 눈에는 우리가 잘 안보인다는 사실을 알고 일본과 맞서야 한다. 일본은 힘이 있는 자에게만 양보할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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