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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세인 건재… 승전의미 퇴색/걸프전 1년후의 미국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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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극심한 경제난에 「전쟁영웅」길거리 배회/“성급한 종전”여론점증… 부시 재선 먹구름
미국 국민들은 걸프전의 승리를 잊은지 오래다.
걸프전발발 1주년이 되는 16일(한국시간 17일)조시 부시 미 대통령이 기념성명을 통해 중동평화회의 진행등 미국이 걸프전을 통해 이룩한 업적을 열거했고 말린 피츠워터 백악관대변인은 이라크국민들에게 사담 후세인 대통령 축출을 촉구했다.
그러나 미 국민들은 전승기념행사나 축제를 벌일 법한데도 냉냉하기만 하다.
지난 크리스마스때 걸프전의 승리를 기념하는 각종 액세서리를 만들어 한몫 잡으려 했던 상인들은 물건이 팔리지 않아 창고에 쌓아 놓고 있다.
걸프전과 관련된 각종 저서도 책방에서 먼지를 쓴채 서가 뒤쪽으로 밀려났다.
누구도 걸프전에 더이상 관심을 갖지않고 있기 때문이다.
걸프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노먼 슈워츠코프 사령관의 자서전 출판을 위해 6백만달러의 고료를 선불했던 밴텀출판사는 언제 이책을 발간할지 일정을 잡지 못하고 있다.
지금같은 분위기에서 책을 출판했다가는 고료는 고사하고 종이값도 건지지 못하겠다는 판단때문이다.
걸프전직후 사상최고에 올랐던 부시 대통령의 인기도 곤두박질했다.
당시 89%에 이르던 지지도가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35%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그의 재선은 보장된 것이나 다름없이 생각됐으나 1년이 지난 지금 경제침체에 대한 당내외의 비난때문에 2월18일 뉴햄프셔 예비선거 패배를 우려하면서 유세를 벌이고 있는 딱한 입장에 떨어져있다.
부시로서는 30년대의 대공황이후 최악의 사태라는 경제상황때문에 완승운운 한가한 소리를 할 분위기가 아닌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걸프전의 승리 자체에 대한 평가도 달라지고 있다.
전쟁직후만 하더라도 1백시간의 지상전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둔 기념비적인 전쟁으로 평가하는데 인색지 않던 미국민들의 인식이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비록 미국을 주축으로한 다국적군이 이라크군을 쿠웨이트에서 내몰기는 했으나 사담 후세인이 지금까지 권좌에 건재함으로써 걸프전의 의미가 반감됐다는 인식이 넓게 펴져있다.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뱀을 죽이려면 머리를 잘아야지 꼬리만 잘라놓고 죽였다고 말할 수 있느냐』고 이죽거리고 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영웅들은 일자리가 없어 실업수당을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어떤 사람은 「사담 후세인은 직업을 갖고있는데 내 일자리는 어데 있나」라는 스티커를 자동차에 붙이고 다닐 정도가 됐다. 아울러 걸프전당시 정밀무기에 의한 폭격은 6%에 불과했고,미 공습에도 불구하고 이라크 핵능력은 온전했으며 이라크전사자도 미당국이 발표했던 10만명이 아니라 1만명 정도라는 등 당시 보도관제속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진상들도 속속 드러나 걸프전평가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따라서 이 전쟁에 대한 역사적 평가도 유보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부시대통령이 걸프전을 팔아 선거에 승리하기는 어렵게 되어 있다. 오히려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도 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그의 외교능력에 대해서는 3명중 2명이 인정하고 있으나 국내정치를 끌어가는 능력에 대해서는 낙제점 이하의 평가가 나오고 있으며 전반적인 통치능력에 대한 신뢰도 떨어지고 있다.
그가 경제를 다루는 솜씨에 대한 지지는 24%에 불과하고 건강보험·가난퇴치문제 등을 다루는 능력에 대한 지지도 25%정도에 불과하다.
앞으로 몇주안에 이같은 하락추세를 멈추게 하지 않는한 부시의 운명은 지미 카터 전대통령과 같이 현역대통령으로서 낙선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부시 진영에서는 아직도 낙관적이다.
비록 인기가 떨어졌다고는 하나 아직도 3분의 2는 부시가 재선될 것으로 믿고 있는 것으로 여론조사에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경우 지금 부시보다 훨씬 인기가 낮았으나 48년 재선된 사실을 들고 있으며 부시가 막판 뒤집기에 강하다는 점도 거론하고 있다.
88년 선거때 선거 4개월을 앞에 놓고 민주당의 마이클 듀카키스후보에게 무려 17%나 뒤졌으나 막판 뒤집기를 했던 예로 보아 15일부터 시작된 부시의 선거 캠페인 결과를 성급하게 전망해서는 안된다는 주장이다.<워싱턴=문창극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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