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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개발의 「손자병법」/이창건(시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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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금년은 조선왕조건국 6백주년,콜럼버스의 신대륙발견 5백주년 및 임진왜란발발 4백주년을 맞는다. 그리고 엔리코 페르미교수팀이 인류최초로 핵분열 연쇄반응에 성공한지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지난 반세기동안 인류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증진과 핵무기감축에 노력해 왔다고는 하나 결과는 5백기에도 못미치는 발전용원자로 가동에 비해 5만개 이상의 핵탄두를 도처에 배치하여,만일 모든 핵탄두를 일시에 터뜨리면 전세계 인류를 스물다섯번 이상 죽이고도 남을 정도에 이르렀다. 말이 5만개지,우리 눈에 보이는 밤하늘의 별이 기껏 5천개 밖에 안된다는 것을 안다면 그것이 얼마나 많은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7년간 국제골칫거리
그간 국제사회는 핵확산 저지책을 마련했는데,그것은 핵보유국의 경우만은 예외로 하고 그밖의 나라들은 그것을 못갖도록 손발을 묶는 제도적 장치다. 핵확산 금지조약이라 함은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겠다는 양심선언을 하는 것이고,그것을 객관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조약체결후 18개월 이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핵사찰을 받는 제도가 안전조치다.
그래서 필자는 핵확산 금지조약을 약혼,안전조치를 결혼 및 호적에 입적시키는 것으로 비유한다. 그런데 북한은 약혼한지 7년이나 지났으나 여태껏 결혼식을 미루고 있고,더욱이 난봉을 피우고 다닌다는 소문을 여기저기서 듣고 있어 골칫거리다.
북한의 핵개발은 주변국가를 극도로 자극할 것이 분명하다. 작년 국제원자력기구회의때 일본 고위층은 필자에게 북이든 남이든 핵개발을 하면 일본은 이에 상응하는 응분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는데,같은 내용이 지난달 『문예춘추』라는 일본 유력 월간지에도 실렸다.
북쪽의 무모한 시도는 일본을 핵클럽(핵무기 보유국)으로 모셔가는 초청장구실을 하게되고,잠자는 고양이를 깨워 발톱과 이빨을 달아 호랑이로 탈바꿈하게 만들고,나아가 평화헌법을 고쳐 「핵사무라이」가 되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일본은 막강한 재력으로 유엔안전보장상임이사국이 되려고 군침을 삼키고 있지않은가. 그들은 핵가방을 들고 유엔안보리에 들어가고 싶을 것이다.
일본이 플루토늄 1백t을 보유케 되더라도 반드시 혼합산화물 형태로 사용해야 양심의 알리바이가 성립될 것이다.
동서독중 어느 하나가 핵보유국이었다면 독일통일은 절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게 나의 지론인데,이것은 한반도에도 그대로 적용될것이다. 세계언론은 평북 영변의 핵시설문제를 몇년간 보도해왔다. 그런데 국제원자력기구의 안전조치 제도로는 해당국이 신고한 시설에 대해서만 핵사찰이 가능할 뿐이므로 만일 북측이 똑같은 핵시설들을 땅속에 비밀리에 건설했다면 핵사찰은 무의미하게 될 것이다. 영변의 시설은 가짜고 진짜는 땅속에 숨겨 있을지도 모른다.
또 핵사찰은 받되 2중장부를 제시할 경우 원본을 찾아내 실상을 파악할 수 있을까.
○사찰로 실상파악 한계
작년 이라크에서는 혐의가 드러날 가능성이 생기자 핵사찰 단원들을 감금한 일이 있었다. 지난 74년 인도가 핵실험후 세계각국으로부터 삿대질을 받게되자,자기네는 캐나다로부터의 원자로 도입시 평화적 목적으로만 이용하겠다고 약속한바대로 오로지 평화적 연구만을 위해 핵실험을 한것 뿐이라고 발뺌했다. 그렇다면 북한도 인류의 번영과 한반도 평화의 정착을 위한 핵시설이라고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직접 듣지는 못했으나 언젠가 국제원자력기구 직원이 영변에 간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안내원이 딴곳을 보여주길래 핵시설에 안내하라고 했더니 저녁에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정전사고가 나서 아무것도 못보고 왔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아 그와같은 주요시설에선 소위 특선의 전기공급을 받고 있을텐데 국제기관 간부가 나타나자마자 정전사고가 났다면 의심받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마침 그때 송전선로상에 까치가 합선사고를 일으켰다고 생각하기엔 개연성이 너무 적다. 왜냐하면 김일성은 벌레를 먹고 사는 유익한 새들을 까치가 잡아 먹는다 하여 까치소탕령을 내린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이다.
반대로 그때의 정전이 사실 그대로라면 그것은 고의적일 수도 있다. 핵무기를 개발하다 실패했을 경우의 2중위장 또는 계획된 속임수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즉 토목구조물을 크게 지어 이쪽의 첩보위성에 찍히도록 만들어 놓고,그것을 미끼로 핵무기 철수와 팀스피리트 훈련 중지,심지어는 농축과 재처리의 기초연구마저도 못하게 만든 고등전술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들은 그간 줄기차게 요구해 오던 단골메뉴중 대부분을 얻어 먹는데 성공했는데,이런 의심은 지난날 금강산댐 건설이나 김일성 사망설로 톡톡히 재미본 선례대로 핵무기 개발분야에서도 비슷한 속임수를 쓰고 있을지 모른다고 가정하면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있을법한 2중속임수
도박판에서는 「장땡잡고 돈먹는것 보다는 망통들고 공갈쳐서 판돈을 싹쓸이」할때의 기분이 훨씬 낫다던데 만일 북쪽이 핵개발에 실패하고도 껍데기만 들고 판돈을 긁어갔다면 김정일은 영변원자력연구소 언덕의 별장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며 쾌재를 불렀을 것이고,주변의 아첨배들은 「떠오르는 태양,김정일 동지」의 신출귀몰하는 전략에 축배를 들며 만수무강을 빌었을 것이다.
그의 고위참모중 『손자병법』의 제3편 모공편을 읽은 자가 어찌 없겠는가. 하여간 우리는 북한에 핵무기가 개발돼 있지 않기를 진실로 바라며 한반도에서 더 이상의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지 않기를 국민과 함께 염원한다.<한국원자력연연구위원·한국핵연과(주)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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