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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영 위기 도로공사 출자회사 노조서 돈 모아 국회에 로비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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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공지사항에는 "우리 공사의 대정치권 발언권 강화와 공기업 지방 이전 정책 및 공기업으로서 위상 확보를 위한 정치권 후원이니 적극 협조를 당부한다"고 돼 있다. 어느 정치인에게 후원할지는 노조가 결정하겠다며 후원금만 내도록 한 것이다.

노조는 이렇게 모은 후원금 4300여만원을 같은 달 26일 건설교통위 소속 의원 4~5명에게 몰아준 뒤 의원들로부터 받은 답례 서신을 직원들에게 돌리기도 했다. 이 공사 관계자는 29일 "겉으론 자발적 참여였으나 노조에 후원금 급여공제 동의서를 안 내면 따돌림을 당했다"며 "3급 이하 직원 490여 명 가운데 430여 명이 참여한 것만 봐도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사 측은 노조에 후원금 동의서를 낸 직원의 급여에서 후원금을 일괄 공제하는 방식으로 노조를 도와줬다.

건설관리공사 노조와 경영진이 정치 후원금 모금에 나선 것은 경영실적 부진으로 공사가 존립 위기에 놓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 공사는 2000년 기획예산처 분류에서 민영화 대상에 포함됐다가 공사와 노조의 거센 반발로 민영화 대상에서 빠졌다. 이후 공사는 2002~2005년 4년 연속 적자를 기록해 누적 적자가 108억원에 달했다. 이 때문에 감사원이 지난해 4월 도로공사에 이 회사의 민영화를 재추진하라고 권고했다. 또 지난해 9, 10월엔 국회 예산정책처와 국회 건설교통위가 잇따라 부실 경영 문제를 지적했다.

노조 관계자는 "후원금 모집은 사실이지만 이는 직원의 자발적 참여였다"며 "노조는 후원금을 내면 전액을 세금으로 환급받을 수 있다는 안내만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안내만 했다"는 노조의 주장과 달리 직원들은 누구를 후원하는지 몰랐다. 이 때문에 경영난에 빠진 공기업이 정치권에 의존해 생존을 모색하는 도덕적 해이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편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관계자는 "노조의 후원금 모집 과정에 강제성이 있었느냐를 따져봐야 위법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며 "최근 한 민간기업이 비슷한 행위를 했다가 사법처리된 바 있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 이세정.정경민.윤창희(이상 경제부문)
이찬호.김종윤(이상 사회부문), 안장원 조인스랜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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