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손 떠났다 … VIP 사인 기다리는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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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서로 움직이고 있다. 구체적인 수치와 현실적인 안을 가지고 접근하고 있다."(29일 오후 5시30분 민동석 농림부 차관보)

"섬유 관세협력 분야 등에서 드디어 상당 부분 견해차를 좁혔다."(29일 오후 6시 산업자원부 이재훈 제2차관)

한.미 정상 간의 전화통화 이후 양측 협상팀은 눈에 띄게 유연한 입장을 보이기 시작했다.

이날 농업 분야 고위급회담 대표로 참석한 민 차관보는 회담 뒤 기자와 만나 "민감 농산물 관세 철폐를 집중 논의한 결과 상당 부분 의견 접근을 이뤘다"면서 "내일 고위급 협상에서 다시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우려했던 쌀 문제는 이번 회담 내내 한 차례도 미국이 꺼내지 않고, 쇠고기 검역 문제도 이날 논의되지 않았다"면서 "29일 미국으로 돌아갈 예정이던 리처드 클라우더 농업담당 수석대사가 귀국을 하루 늦추고 마지막 회담을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농업.섬유 협상이 급물살을 타면서 양국 대통령들이 최종 판단해야 할 미해결 품목은 쇠고기 등 3~4개로 좁혀졌다.

한.미 FTA 협상단 고위 관계자는 사실상 실무협상이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 전했다. 그는 "협상은 이제 우리 손을 떠났다. VIP(대통령)의 최종 OK 사인만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양측 실무자들은 양국 정상의 최종 담판을 위한 판단 자료를 준비하는 데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종훈 한·미 FTA 협상 수석대표(中)가 29일 아침 굳은 표정으로 서울 하얏트호텔 내 협상장으로 들어서고 있다.최승식 기자

◆ "최후의 21시간"=노무현 대통령이 귀국하는 30일 오전부터 긴박한 상황들이 꼬리를 문다. 귀국 직후 노 대통령 주재의 관계 장관 대책회의가 기다린다. 노 대통령은 이 회의에서 실무팀이 올린 세 가지 시나리오를 보고받고 최종 선택을 할 것으로 보인다. 양측은 30일 자정을 협상 타결의 목표 시한으로 잡고 있다. 한국 협상단은 이미 타결된 90% 이상의 분야에 대해 협정안 문구를 최종 손질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측도 바빠졌다. 부시 대통령의 측근인 커트 통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경제담당관이 협상장에 상주하면서 백악관과 수시로 전화통화를 하며 협상 전략을 지휘하고 있다. 스티브 노튼 미 무역대표부(USTR) 대변인은 "(한국과의) 협정을 체결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며 "가장 어려운 결정은 협상 마지막 날에 내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 'FTA 비상대기령'=정부는 각 부처 협상 관련자들에게 31일 오전 4시까지 비상대기령을 내렸다. 관련 부처의 장.차관급들도 비상 근무에 들어갔다. 29일 경제부처들은 권오규 경제부총리 주재로 관계장관회의를 여는 등 협상 진행 상황을 점검했다.

미국 측 협상 최고 책임자인 캐런 바티야 미 무역대표부 부대표(左)와 웬디 커틀러 FTA 협상 대표가 긴장된 모습으로 협상장에 들어서고 있다. 최승식 기자

정부는 이날부터 한.미 FTA 체결지원회를 중심으로 FTA 지원 종합대책 수립에도 착수했다. FTA 피해 종합대책에는 ▶농업 시설 교체, 생산성 향상, 수출 지원을 포함한 농업 분야 지원대책과 함께 ▶서비스 진입 규제와 업종 간 융합 관련 규제를 개선하는 것을 골자로 한 서비스업 육성방안 등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정부는 한.미 FTA 체결에 따른 지원 종합대책 발표를 4월 2일로 잡았다. 이를 이틀 앞당겨 31일 경제정책조정회의를 통해 발표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가 협상 타결에 따른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해 한 발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홍병기.윤창희 기자<klaatu@joongang.co.kr>
사진=최승식 기자 <choiss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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