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싹까지 잘라간 반인륜 범죄/학적부로 드러난 국교생 정신대 만행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군,총독부 통해 각 학교에 지시/끌어갈땐 근로… 결국 위안부로/초중생 전국에서 차출 가능성
14일 서울 영희국교와 교동국교에서 발견된 국민학교여학생 정신대 징발기록이 적힌 학적부는 「잊혀졌던 과거」를 만천하에 드러내며 국민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고 있다.
더욱이 미야자와 일본 총리의 방한을 이틀 앞두고 터져나왔다는 점에서 더욱 국민들의 분노를 증폭시키고 있다.
학적부에는 당시 학생들이 정신대로 출발하기까지 설득과정·동원경위·출발날짜·장소까지가 일방적인 일본인들의 시각으로 기록돼 있어 태평양전쟁말기 국민학생에까지 손을 뻗친 일제의 수탈상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14일 확인된 학생들은 서울 영희국교에서 6명,교동국교에서 4명으로 12세에서 14세까지의 어린소녀들.
이들은 기록상으로 몇가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우선 성적이 대체로 우수하고 성격이 성실·온순했다는 점,신체가 건강하고 발육상태가 양호했으며 집안환경은 대체로 좋지 못했다는 점 등이다.
이들의 성적은 학과성적 10점 만점에 대체로 7∼8점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수신(도덕)·창가·체조·봉제 등 과목에서는 대부분의 학생이 9점을 맞은 것으로 나타났다.
황금정에 살던 양모양(당시 12세)의 경우 『성격이 순진하고 책임감과 인내심이 강하며 건강상태가 극히 양호하고 정신대발표가 나자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과감히 지원했다』고 적혀있었다.
이들의 아버지 직업은 재목점사무원·미곡상·공업·전도사·가구제조 등 1차산업 종사자가 대종을 이루고 있으며 부친이 국교교사였던 안전기선양(당시 14세)의 경우 「천황폐하의 명령에 따르는 것이 곧 애국」이라는 당시 분위기와 세뇌교육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초기 정신대는 근로보국대와 종군위안부로 나누어져 근로보국대는 군수물자공장에서 강제노역을,종군위안부는 일선병사들 수발을 들었다고 하나 전쟁 말기로 가면서 그나마 구분이 없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번 기록에 나타난 학생들이 부산시 불이월 항공기 군수공장에서 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이들이 다시 동남아나 남양군도 등으로 끌려갔을 가능성도 높다.
한편 이들중 8명은 44년 7월1일과 2일에,2명은 이듬해 2월25일 같은 불이월공장으로 떠난 것으로 드러나 최소한 두차례이상 일제의 정신대 차출 독려가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들이 재학중 정신대로 떠나버렸는데도 학적부에는 졸업일이 모두 45년 3월20일로 적혀있어 일본정부가 체계적으로 정신대동원에 관여하고 있었다는 직접적 증거가 되고 있다.
이 때문에 성경 뿐만 아니라 전국에 걸쳐 역사가 오랜 국민학교·중학교의 학적부에는 훨씬 더 많은 자료가 그대로 사장되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정순모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