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한국 로체샤르·로체 남벽 원정대 <10>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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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 한국 로체•로체샤르 원정대가 4월 1일 오전 10시(현지 시각) 라마제를 지내고, 무사히 등반을 마칠 수 있도록 빌었다. 청록색 하늘 아래 도도히 서 있는 로체(8516m) 남벽 오른편 베이스캠프(5220m) 상단에 마련된 제단에는 네팔 제사 음식과 한국 원정대가 가져온 음식들로 채워졌다. 너럭 바위를 기단으로 작은 돌맹이를 쌓아올린 제단의 중앙에는 전통적인 라마 불교의 제상이 차려졌다. 한켠에 부처의 사진과 중앙엔 다다르(달라이 라마를 상징하는 조형물), 도르마(산양을 형상화한 음식), 잠바(일종의 약과)를 놓았다. 그리고 제단 윗부분으로는 대원들의 등반 장비를 빙 둘렀다. 한 대원의 헬멧에 씌여진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믿습니다”라는 문구가 거대한 로체 남벽에 대한 의연한 자세를 보여준다. 제단의 기단 밑으로는 원정대가 가져온 갖가지 음식과 과일들로 빙 둘러싸고, 그 중앙에 라마가 자리를 잡았다.

밍마 도르지 라마는 베이스캠프에서 5시간 거리인 팡보체 사원(Pangboche Monastrey)에서 특별히 이번 라마제를 위해 1일 아침 합류했다. 동네 할아버지를 연상시키는 폴라텍 소재의 상의와 편한 바지를 입은 상태에서 왼쪽 어깨에 추바(짙은 감색의 라마 승복)를 걸친 뒤, 경전을 읽기 위해 검정테 안경을 꺼내 들었다. 밍마의 앞에는 다시 제상이 차려졌는데, 차와 창(세르파 가정에서 만드는 일종의 막걸리)을 놓고, 그 옆으로 쌀이 가득 담긴 접시를 놓았다.

오전 10시가 되자 밍마는 조용한 음성으로 제를 주관했다. 밍마는 양 손에 북셀(바라)을 들었고, 옆에 앉은 세르파는 응아(북)를 들었다. 북셀과 응아을 치고 난 뒤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20여분간 경전을 읊었다. 그 사이 주변에 있는 세르파들은 오색 룽다(깃발)가 걸린 기둥을 세워, 제단에 살포시 얹어 놓았다. 밍마는 좀 더 빠른 장단으로 독경하며, 찹(튜라는 나뭇가지에서 우려낸 물)을 사방으로 뿌린다. 세르파들은 다시 오색룽다가 묶여 있는 기둥에 다섯 갈래의 룽다묶음을 길게 늘어뜨려놓는다. 밍마의 독경은 계속되고, 세르파들은 오색 룽다가 걸린 기둥을 제단의 맨 꼭대기에 올려놓는다. 제단 주변은 빨래줄에 만국기가 휘날리는 듯 하다. 제가 진행되는 동안 대원들은 말이 없다. 묵묵히 지켜보는 대원들의 의연한 표정과 선글라스 렌즈에 비친 웅장한 로체의 형상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오색 룽다 기둥이 세워지고, 한 세르파가 대원들에게 쌀을 조금씩 나눠준다. 라마의 독경이 잠시 침묵을 고하고, 세르파들의 함성과 함께 대원들의 손에 쥔 쌀은 제단에 뿌려진다. 같은 방법으로 밀가루를 제단에 뿌린다. 초지일관 숙연했던 분우기는 엄홍길(47 트렉스타) 대장이 대원들 얼굴에 밀가루를 뿌리면서 다소 긴장이 풀리는 듯 하다. 세르파들도 자기네들끼리 얼굴에 밀가루를 뿌려가며 유쾌한 분위기다. 라마제는 지난 2003년 엄홍길 대장과 함께 로체샤르를 등반하다 사고를 당한 박주훈, 황선덕 대원의 영혼을 달래는 묵념으로 마무리지었다.

엄홍길 대장은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다”며 “’도전, 인간 한계를 넘어’라고 정한 이번 등반의 기치가 부끄럽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이에 앞서 원정대는 29일, 로체 남벽 아래 왼편 5220m 지점에 베이스캠프를 구축했다. 22명의 원정대원과 17명의 세르파가 80여일 간 머물게 될 베이스캠프는 로체 아래 ‘코리안타운’을 연상시키는 대규모 텐트촌이 됐다. 대원들이 머무르게 될 12동의 텐트와 세르파 숙소 7동, 식량과 장비 저장 텐트 5동, 주방과 식당용으로 쓰일 대형 텐트 각각 1동, 일명 ‘패밀리룸’으로 불리게 될 20인용 대형 돔 텐트 1동, 그리고 화장실 텐트 4동이다.

로체 베이스캠프(네팔, 5220m)=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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